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게인 Jul 26. 2023

학생인권조례에 부정적입니다

그런데 원인이 학생인권조례라고요? 그건 아니죠.

 한 때 아이들을 좀 가르쳤던 관계로, 지금도 교육에 관심이 남아있어 관련 글을 많이 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린이 청소년 친화도시 추진 협의체' 활동을 비롯해서 청소년이나 사회활동에도 어느 정도 참여를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은 거의 활동하지 않지만 말이죠.


그 활동을 그만둔 계기 중 하나가 '학생인권조례'였습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 초등학교에서 촌지를 요구하거나 초등학생을 상대로도 주먹과 발로 구타하는 선생님을 만난 세대입니다.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문제가 있는 선생님이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학생인권조례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이었던 것은, 선생님과 학생 관계보다 학생과 학생 간의 관계가 더 무너져있었고, 그건 학생인권조례에 의해서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는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 해결에 있어서의 우선순위가 문제였습니다. 학생인권이 지켜지는 것은 선생에게서 지켜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같은 학급의 학우들에게 지켜지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예전의 '불량청소년'이 불우한 가정환경에 의한 것이었다면, 요새의 일진은 좀 다릅니다. 생각보다 풍족한 환경에서 자란 청소년들이 '정서적 이유'를 들어서 탈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환경이 '상대적'으로 가장 가혹하고 불편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만, 이 세상 모든 것이 상대적이지만은 않다는 것 역시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그 논의가 끝나지 않았는데 상대적인 불편함만을 해소하려 한다면 문제가 발생하는 겁니다.




 그 문제는 둘째 치고... 예상대로 학생인권조례 이후에 학생들의 삶은 더 행복해지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에게 물어봐도 질문을 교묘하게 편집하지 않고 제대로 묻는다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공무는 결과를 내야 하니까 '학생인권조례 이후에 선생님들이 더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것 같냐'는 식으로 물어보면 마치 긍정적인 것처럼 나오겠죠. 하지만 여전히 학생들의 행복지수는 하락 중입니다.


 사실 그 아이들에게 시급했던 것은 주변에 노출되는 안 좋은 영향들과 또래 집단의 폭력성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게 학교 선생님의 강압적인 학습요구보다 훨씬 시급한 문제였지만, 청소년 활동가라는 애들의 대부분은 그런 상황을 겪어본 일도 없고, 심지어 그걸 이끌어주는 사회의 청소년이나 문화활동가들도 별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인권조례에 부정적이었습니다. 심지어 저는 청소년 인권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해 본 적 있었음에도 말이죠.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 그랬습니다. 그때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것은 청소년 인권은 어른들을 대상으로 쟁취하는 게 핵심이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집단에게서 가장 중요하다는 거였죠. 인권 활동을 하는 친구들은 또래 집단에서 특이한 취급을 받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별개의 문제니 독립적으로 접근하면 되지 않았겠냐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인간은 그리 쉽게, 그리고 한 번에 많이 바뀌지 않습니다. 한 번에 요구받을 수 있는 변화에는 한계치가 있죠. 


 그리고 위에서 말했듯이, 교권이 학생 간 발생하는 문제 해결을 위해 개입해야 하는데 학생 인권조례는 그 교권에 상당히 많은 제약을 불러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순서의 문제라고 했던 것이죠. 




 그럼 진짜 문제는 뭐였을까요?


 계속 여러 글에서 이야기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당시에 아이들이 통제 없이 받는 영향에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나쁜 행동을 '주변 사람'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보고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초통령'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인터넷에서 떠받들여졌습니다. 돈만 되면 그 내용에 교육적으로 아무리 좋지 않은 것들이 많아도 제재할 수가 없었죠.


 당시에도 그런 기사나 뉴스는 많이 나왔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그걸 제재하지 못했습니다. 진보든 보수든 상관없는 부분이었습니다. 


 진보라고 스스로 이야기하던 사람들은 그때 여성 이슈에 묶여서 청소년이나 아동 이야기는 쉬쉬하고 있었습니다. 여성보다 더 약자가 나서면 여성 이야기를 꺼내기 곤란했기 때문이라고 추측되지만 심증일 뿐입니다. 그들이 아동 청소년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은 원론적인 것들 뿐이었습니다. 결국 진보라는 이름을 바닥에 짓밟아 버렸죠.


 그리고 보수는 오히려 방관하는 게 아니라 장려했습니다. 당시 그런 극단적인 성향의 커뮤니티들에 대해서 보수 정치인이 발언했던 것을 기억해 보면 아주 가관입니다.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죠. 청소년의 대부분이 그런 영향에 노출되었을 때 나중에 어떻게 될 것인지 말입니다. 인터넷 초창기에 정보가 정말로 '알기 위해서' 쓰이던 시절에는 인터넷 여론이라는 게 보수에게 불리했지만 '여론 조작'은 원래 그들에게 훨씬 익숙한 일이었습니다. 


 지금 청소년들이 어떠냐고요? 


 지금 청소년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10여 년 전에 그런 영향에 노출되었던 초등학생 아이들은 이미 20대 중반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이 다시 초등학생들에게 2차 재생산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언어와 사고를 학습한 이들이 유튜브에서 지금도 몇백만의 구독자를 대상으로 유튜버를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우리 아이는 멀쩡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친한 지인의 아들이 대학생이 될 때쯤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처음 이야기를 나눴는데 귀를 의심했습니다. 전형적인 '극단적 사이트'의 영향을 받은 케이스였거든요. 그분도 전혀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걸 심각하다고 생각도 안 하고 계셨죠. 그저 한참 반항할 나이라서 부모와 말을 잘 안 섞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셨을 뿐이죠. 


 이번 신림동 사건과 초등학교 교사 사건은 전혀 달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비슷한 원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사고방식'이 만연해 있는 것이 문제죠. 


 심지어 학생인권조례가 있어도 학생 간에 발생한 학교폭력은 이사장에게 전화하고 법조계 인맥 동원해서 시간 끌고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다는 전례가 이미 떡하니 나왔습니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에 대한 거지 학부모에 대한 것이 아니거든요. 학부모가 그런 사고면 어차피 반복되는 문제라는 이야기입니다.


 그걸 '학생인권조례'를 때려잡아서 해결한다? 자기들도 그게 해결책이 아니라는 건 알 겁니다. 그저 정치적 유리함에 이용할 뿐이겠죠. 학생인권조례에 부정적이었던 제가 봐도 그건 완전히 헛다리를 짚고 있는 거니까요.



(사실 2배가 넘는 글을 썼지만... 고민 끝에 최대한 순화하고 가볍게 쓰기 위해서 다 잘라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누구나 개발자가 될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