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청춘의 시간은 그렇게 값싸지 않다
빗속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면서 길에 붙어 있는 전단지를 봤다.
사실 처음 본 전단지는 아니다. 적어도 몇 년째 비슷한 내용으로 계속 붙어있는 개발자 관련 '국가지원사업'이다.
이전에는 정말 딱 내용만 전달하던 전단지였는데 요새 장사가 잘 안 되나 보다.
약간은 더 '마케팅'에 신경을 썼는지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개발자로 취업했다고? 축하해. 그런데 전공도 아닌데 어떻게?
우리가 돈이 없지 열정이 없냐? 무료로 개발자 교육 해줄게!
슬프게도 보통 '마케팅'은 '상술'이거나 '사기'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정말로 전공도 아닌데 3개월 국비 교육으로 개발자가 될 수 있을까?
있다.
단지 가능성의 영역으로 이야기하자면 당연히 있다. 그런 사례도 충분히 있다.
그래서 저 광고는 완전히 허언증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실제로 국비교육을 받으면 전공자가 아니어도 연계로 취업을 알선해 주는 것도 맞고, 무료로, 아니 심지어 교통비를 지원해 주면서 교육을 해주는 경우도 있다.
그럼 문제가 없는 거 아니냐고?
그럼 그걸 믿고 교육을 받았던 전체 인원 대비 성과는 어떨까?
수십 명이 한 번에 받는 교육이지만 정말로 개발자가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인원은 3개월 동안 배우긴 했지만 막상 연계된 회사에 가면 적응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를 훨씬 많이 봤다.
"어? 아닌데요? 제가 본 곳에서는 꽤 많이 취업하던데요? 배우는 사람들도 잘하던데요?"
그건 조건이 하나 더 들어간다.
개발자들이 누구나 취업이 잘 되냐고 한다면 그건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관련 학과를 나와서 프로그래밍과 개발을 할 줄 알지만 첫 취업이 쉽지 않거나 중소기업에서 시작하는 케이스들도 많이 있다.
특히 중소기업에서 시작한 케이스는 지원금이 끊기는 순간 해고되는 사례도 종종 있다. 그럼 이렇게 경력이 끊겨버린 개발자들은 어떻게 할까? 금방 취업이 다시 되는 걸까?
의외로 취업에 용이하다는 이유로, 또는 비슷하지만 다른 개발 업무로 옮기고 싶다는 이유로 저런 교육에 들어간 '개발자 출신'들을 꽤나 많이 봤다.
그래서 그들은 '원래 할 줄 알던' 개발 업무를 취업 연계를 통하여 다시 복귀한다.
그리고 그것은 고스란히 저 교육의 성과로 반영된다. 마치 저 교육을 통해서 개발자가 되고, 취업 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잘 적응해서 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문제는 저 교육의 숫자를 채우는 나머지다.
비전공출신 개발자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비전공출신은 개발자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정말로 적성에 맞는 누군가에게는.
하지만 대부분은 문구에 낚여서 마치 '누구나' 3개월만, 6개월만 따라 하면 개발자가 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고 뛰어들기 마련이다.
그리고 깨닫는다. 거기서 개발자가 되는 건 결국 그 3개월 6개월을 열정을 가지고 따로 챙겨가면서 공부하는 정말로 '적성에 맞는' 사람들뿐이라는 것을.
결국 그 사람들이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 아니야?
그게 그들의 변명이겠지만 잘못된 이야기다.
모두가 SKY라고 부르는 대학을 못 갔다고 전부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적성에 맞는 사람이 맞는 노력을 했을 때 그런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저 모두 다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타인의 시간을 그리 쉽게 소모하게 만드는 것이 옳은 것인가의 문제다.
나중에 지나고 나면 그 시간이 정말 아깝고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까.
비슷한 사례는 많다.
마치 영어만 엄청나게 잘하면 취업이 잘 될 것처럼, 아니면 자격증만 따면 다 해결될 것처럼.
수많은 유혹들에 흔들리다 보면 결국 젊음의 시간은 끝나고, 손에 쥐고 있는 것은 '해왔던 일'들이 대부분이다. 잘할 수 있는, 적성에 맞는 일이 아니라.
젊을 때는 청춘의 시간이 스며들듯이 빠져나간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한다.
그래서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거나 '젊기 때문에 실패를 경험해도 된다'는 소리를 한다.
지금은 40살까지도 청년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그들이 정말 젊고 실패해도 되는 그런 시간들을 보내는 게 맞을까? 그러면서도 그들이 부럽게 쳐다보는 건 30살도 되지 않았는데 자신의 적성을 살려서 자수성가 한 실리콘 밸리의 청년 사업가들이나 엄청난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유튜버 같은 사람들이다.
그 소수의 성공을 보면서 '야! 너도 할 수 있어!'라는 응원을 보내는 건 쉬운 일이다. 어차피 그들이 망하더라도 자신들이 책임질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그렇게 말할 것이다.
운이 없었어.
조금 더 노력하지 그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