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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인 Dec 02. 2022

중2병이어도 괜찮아

사춘기가 우리에게 남겨야 하는 것들

 중2병이라는 단어 자체는 1999년 일본의 라디오 방송에서 기원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대충 비슷한 느낌은 아마도 누구나 알고 있다. 한국에서도 그 이전에 이미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오히려 더 중2병스러운 단어가 존재했고, 기본적으로 '사춘기'라는 말이 거기에 해당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 좀 더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것을 '중2병'이라고 일컫기 시작했고, 어느새 이 단어는 우리나라에서도 흔한 단어가 되었다.


 어떤 교육감은 중2병을 치료하겠다면서 중학교 2학년만을 대상으로 하는 가을 마라톤을 개최하겠다고 나섰다가 엄청난 비판을 들었다. 말이 중2병이지 그게 정말로 특정 학년을 병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교육감이었다는 것이 대단할 따름이다. 심지어 교육부 장관 출신이었다.












 작품이 방영한 시간 자체는 중2병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이전이었지만 세기말 중2병을 떠올리면 많은 애니메이션 팬들이 떠올리는 인물이 한 명 있다. 바로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주인공이었던 '이카리 신지'가 그 주인공이다. 유약하면서 동시에 '급발진'을 하기도 하고, 반항적이지만 애정결핍적인 성향을 보인다. 그 당시의 평론에서도 너무나도 평범한 중학생의 평균적이고 찌질한(?) 모습을 대변한 인물이라 사람들이 감정 이입이 잘 되는 거 아니냐는 평가도 있었다. 


 물론 일본의 소위 '리얼 로봇'계에서야 그 유명한 '기동전사 건담'의 생떼 부리는 망나니 '아무로 레이'를 필두로 시작해서 현실적인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쓴 적이 많기에 오히려 클리셰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감 없고 휘둘리기만 하는 '이카리 신지'에서 사람들이 '평범함'과 '공감'을 느꼈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세기말이라는 분위기는 세상에 맞서는 개인의 무력함을 강조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사람들은 '중2병'과 '쿨병'을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중2병은 사실상 '감수성'의 영역이다. 감정이 풍부하고 그걸 주체하지 못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행동들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가 '중2병스럽다'라고 쓰는 표현들은 대부분 감수성이 과하다고 느끼는 것들에 대한 반응인 경우가 많다. '질풍노도의 시기'가 그랬고 '사춘기'가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사실 무엇이 과한 건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일은 어렵다. '망상'에 가까워진다면 확실히 과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조금 더 '정의'라든가 '낭만'같은 것을 '감정적이다'라고 판단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문제가 발생한다. 


 어찌 보면 '중2병'이라는 네이밍이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그 교육감이 중학교 2학년만 뛰는 마라톤 같은 것을 생각해냈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해줄 수도 있다. 대부분의 청소년은 자신들이 '어리다'라고 취급받는 것을 싫어한다. 어리지만 동등하게 취급받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의 참정권이라든가 사회 참여를 중요시하는 현상들은 이런 추세에 편승한 움직임이다. 그리고 청소년 인권에 대한 부분이 강하게 강조되면서 교권을 역으로 침범하는 현상도 그런 부분의 일종이다. 




 그건 대단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상태가 되기를 바란다. 그 기준은 계속 바뀌겠지만. 그래서 나이가 들면 더 젊었을 때를 그리워하고 어릴 때는 더 빨리 나이를 먹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 기준의 상태가 단지 나이만이 아니라면 어떨까. 그 속성이 좋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어떤 사람'이 되는가를 고민해야 하는 수많은 청소년들이 '뭘 해서 벌든 돈을 벌면 최고'라는 것을 배운다. 지금의 주식과 코인을 이야기하는 사회는 더욱 그렇다. 그리고 책임이 있는 언론과 어른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변명을 위해 열심히 책임지지 못할 말을 떠벌인다. 결국 현실의 어두운 면은 그렇게 반영된다. 


 '중2병'은 좀 더 판타지적인 느낌이 되었고, 사람들에게는 피해야 하는 어떤 소름 돋는 무엇이 되었다. 이제는 사춘기라는 말을 낯설어하는 사람도 많다. '질풍노도의 시기'는 나이 든 어른들의 기억의 조각이 되었다. 하지만 그게 정말 맞는 걸까.




 가깝고도 먼 사회가 되었다. 심지어 코로나가 창궐하면서 사람들은 몇 년이나 서로 쉽게 만나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다. 그리고 '적응의 동물'답게 인간은 거기에도 적응했다. 직접 만나지 않아도 사람들은 '실시간 온라인'의 사회를 만들었다. 친구들은 직접 볼 때도 있지만 온라인상에서 항상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온라인 상이기에 할 수 있는 많은 일탈 역시도 존재했다.


 우리나라에서 몇 년째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LOL)'에 대해서 뒤따르는 말이 있다. '부모의 안부를 묻는 게임'. 좋은 말로 순화한 표현이고 실제로는 채팅으로 서로 갖은 욕설과 비속어를 주고받는 게임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게 몇 년째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이고 특히 청소년과 대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지속적으로 그런 언어에 노출되는 것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특히 감정이 과한 '중2병'의 학생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일까. 


 사춘기에 대해서 아주 예전부터 따로 구분해서 다뤘던 이유는 그 시기의 감정이 쉽게 변동되는 것에 대해서 주변에서 이해하고 그것이 부정적인 행동들로 이어지게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지금의 세상은 익명성에 기댄 온라인에서는 부정적인 행동들을 부추기는 말들이 난무하고 현실에서는 '중2병'이라며 사춘기 자체를 부정적인 표현으로 접근하고 있다.












 '내가 갖지 못한다면 부숴버리겠다.'라는 대사는 클리셰가 되었다. 이게 클리셰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감정에 노출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은 나쁜 짓을 해서라도 편하게 살고 싶은데 누군가 '옳은 행동'을 하면 부끄러워하기보다 공격을 한다. 진지하고 정의롭고 낭만적인 사회가 되면 안 되는 수많은 사람들이 '쿨병'에 걸려서 사람들을 '진지충', 'X선비'등으로 만든다. 횡단보도 신호등에서 초록불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을 비웃는 것처럼.


 사춘기는 사실 성장기다. 그 시기는 사람에게 엄청나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인간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지만 사춘기는 조금 다르다. 가장 감정적인 시기이기에 사람이 바뀔 수 있다. 그 영향은 아주 긍정적일 수도 있지만 그와 동시에 지울 수 없는 어두움을 싹트게 할 수도 있다. 물론 언젠가 그 순간을 넘어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하는 순간이 오겠지만. 우리는 감정이 풍부한 시절에 대체 무엇을 얻은 것일까. 그리고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중2병'이라는 낙인을 찍고 무엇을 주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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