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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인 Oct 04. 2022

'책'의 소멸

멸종하는 것은 책이 아닙니다

 유사 이래 책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정보전달의 수단 중 하나였습니다. 책 이외의 것 중에서 애초에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은 벽화 따위의 책을 대신하여 적힌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책'이라고 부르는 물건 자체가 '기록'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고대의 철학자들부터 현대의 수많은 이야기들까지 책을 통해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책은 위협받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우리의 기록은 '문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 텍스트 조차도 보관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책'의 형태보다 '디지털'의 형태로 전환되어 기록되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서점은 있습니다. 여전히 책을 읽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전히 책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간이 '활자'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 한 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형태가 바뀌어서 e-book이라는 것이 된다 하여도 근원적으로 책이 사라질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사람들은 시각적 정보에 많이 의존합니다. 물론 책 역시 시각적 정보이긴 합니다. 하지만 영상이나 음성이 주는 정보의 전달성과는 다릅니다. 영상은 굳이 신경을 기울여서 보지 않아도 눈에 들어오는 게 있습니다. 음성은 가만히 있어도 들리는 것이 있습니다. 문자에 익숙해진 인간은 신경을 기울이지 않아도 시야에 들어오는 활자를 읽거나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것 역시 시각정보의 일종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게 가능한 것은 '책'이 아니라 '문자'의 이야기입니다.


 책은 가만히 있다고 눈에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시각적 정보를 따라서 읽고 뇌에서 해석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책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짧지 않습니다. 보통 손으로 넘겨가면서 봐야 하는 형태로 제작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불편하고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단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어떻게 하면 더 게으를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그래서 오디오북이라는 것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정보 전달의 가장 우선되는 매체가 영상매체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BLog를 넘어서 VLog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텍스트 정보 이상으로 영상 정보를 많이 접하고 그만큼 신뢰합니다. 




 인터넷은 책에 엄청난 영향을 줬습니다. 그리고 책이 가지고 있던 가장 중요한 기능 하나를 가져갔습니다. 바로 '정보 전달'의 이라는 측면입니다. 


 책은 처음 집필이 시작된 이래로 출판되어 나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예전에는 지식이나 정보에 대한 변동의 사이클이 길어서 한번 나온 책은 수십 년 넘게 읽혀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논문까지 가지 않더라도 대학교에서 리포트 하나를 쓰더라도 제시된 정보가 몇 년만 지난 내용이라면 의미가 퇴색됩니다. 최신화된 정보가 의미 있는 사회가 되었기에 오래된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그만큼 의미가 없습니다.



 시중에 수많은 컴퓨터 프로그램에 관한 책들이 나오는데, 그 대부분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가치가 없어집니다. 그러한 프로그램들은 다음 버전이 나와서 내용이 변하거나 아니면 프로그램 자체가 쓰이지 않게 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그러한 책들이 전해주는 정보는 '그때 그 시절'이 아니면 거의 가치를 잃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다 보니 활자로 된 정보전달보다 '디지털 텍스트'나 '비주얼 강의'를 더 선호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가르치는 사람들도 한 번 배웠던 내용으로 계속 발전 없이 가르치기 힘들어졌습니다. 정보가 통제되지 않는 시대라는 것은 그렇습니다. 최신화되지 않은 강의들은 계속 그 의미가 줄어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갈수록 전문 서적 이상으로 '유튜브'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책의 밀접한 이웃이었던 교육에서 쓰이던 책들의 일부는 멸종위기에 처했습니다. 교재라는 것이 여전히 중요하긴 하지만 사람들은 그 교재가 꼭 활자일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강의의 교재는 디지털 문서로도 충분하고 실제로도 대부분의 자료를 그렇게 건네받습니다. 시간과 민감한 정보나 기술을 다루는 교육들은 그렇게 책과 멀어지고 있습니다. 


 소위 '인강'이라고 불리는 인터넷 강의는 이제 너무도 일반화되었습니다. 서서히 올라오던 화상회의와 화상강의 시스템은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엄청나게 발전했습니다. 직접 강의에 별다른 문제가 없어진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은 화상으로 강의를 하거나 미팅을 합니다. 이메일로 복잡하게 내용을 주고받던 것도 줄어들었습니다. 


 블록체인과 함께 주목받는 웹 3.0이라고 부르는 시대 자체가 실시간 쌍방향 소통을 기반으로 합니다. 누군가 온라인에 게시하고 그것을 다수가 볼 수 있던 웹 2.0 시대를 지나 실시간 업데이트와 상호작용이 기본이 되었습니다. 이제 모바일을 '전화'로 보는 사람보다 '스마트폰'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그게 의미하는 것은 쌍방향이 가능한 '단말'을 사람들이 24시간 떼어놓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전에는 공공화장실을 가면 신문이 놓여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상하리만큼 집중이 잘되는 화장실에서 활자를 읽으려는 욕구는 보편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책이나 신문을 아예 비치해두는 화장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 세대는 다릅니다. 대체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화장실에서 뭘 하고 있었을지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화장실에서 읽을 게 없으면 옆에 놓여있는 물건 제품 성분표까지 싹 다 읽었다고 하면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금 쓴 글을 지금 공유하지 않으면 언제 옛 글이 될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블로그'가 성행하고, 우리가 '브런치'를 쓰고 있습니다. 브런치에도 수많은 정보전달 글들이 있고, 널리 읽히고 있습니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이것이 '빠른 정보전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브런치에서 책으로 옮겨지는 대부분은 '정보 전달'이 아닌 문학적 가치나 사유의 가치를 전달하는 인문학 서적이 많습니다. 정보의 전달 용도라면 가치의 변동에 비해서 활자로 인쇄되고 읽히며 전파되는 것이 너무 느리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책의 가치는 '보존'의 의미가 우선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책을 데이터화 하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데이터는 아주아주 작은 상태로도 보관이 가능하며, 심지어 대량의 복제품을 생산하는데도 훨씬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NFT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명화들조차도 디지털로 카피되면 원본이 별 의미가 없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의 가치는 소멸하지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디지털은 어떤 환경이라도 '단말'이 없으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해 책이나 그림이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로 존재한다면 우리는 인간 자체가 단말이 되어 충분히 그러한 것들을 향유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24시간 접속 가능한 단말을 휴대하는 시대가 되었다 하더라도 인간은 인간 자체를 가장 신뢰할 따름입니다. 


 책은 멸종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아주 어린아이들에게는 책이 소중하고 중요한 감정의 전달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아이들이 디지털과 영상매체가 익숙하다 하더라도 아이들에게는 오감을 활용한 체험이 중요합니다. 뇌파로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디지털과 메타버스의 시대가 온다 하더라도 스포츠가 없어지지 않을 것처럼 말입니다. 교과서가 전부 디지털 패드로 전환되는 시대가 올 수도 있습니다. 갈수록 책을 적게 읽는 시대는 이미 왔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우리 몸이라는 단말로 세상과 소통하는 이상 책은 멸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멸종한다면 인간이 먼저 멸종할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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