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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설 Jul 31. 2023

제발 나 좀 혼자 내버려 둬

긴 시간 동안 혼자 동굴 속에 갇혀 지낸 나는

밤 아홉 시쯤, 진동이 울렸다.

동생이었다.


"누나, 밥은 먹었어? 주말에 같이 밥 먹을까?"


"아 누나가 좀.. 컨디션 봐서."


얼떨결에 받은 전화를 다급하게 끊자마자 한순간에 우울한 기분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팠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초조했고, 짜증이 솟구쳤다. 그러다 괴로워졌고, 급기야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나 조차도 내가 왜 이러는 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나를 더욱 불안하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약을 더 챙겨 먹으며 생각했다.


"제발 나 좀 혼자 내버려 둬."


동생의 밥 먹자는 전화 한 통이 이렇게 나를 흔들어버리는 지경이 된 내 상태에 화가 났다. 전화 한 통. 그게 뭐라고. 밥 먹자는 말이 뭐 어때서 이렇게 불안하고, 힘들어야 하는 걸까. 대체 왜.


그리고 다음날 병원을 찾았다. 주치의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도 격앙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동생한테 연락이 왔어요. 이런 연락이 너무 힘들고 무서워요. 진동 울리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대고 불안해져요. 제가 아픈걸 쉽게 생각하는 걸까요? 연락하나도 이렇게 힘든데. 너무 화가 나요. 제발 그냥 저를 혼자 내버려 뒀으면 좋겠어요."


주치의 선생님은 내가 혼자 동굴에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말했다.


 "동생은 아픈 누나한테 연락하기 전에 많이 고민하고, 기분도 살폈을 거예요. 그리고 누구도 환자분의 아픔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이 말을 듣는 그 순간에는 '역시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어.'라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다. 핸드폰에 누군가의 이름이 뜨는 것이 공포가 되는 지금 이 상황을 공감하고, 이해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군가의 연락이 이토록 나를 힘들게 하고, 그 누군가가 가장 가까운 가족 혹은 친구라 더 외롭고, 아프다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버스 창문에 머리를 처박고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한참 동안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울컥했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기분이 진정되면서 주치의 선생님의 말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어쩌면 동생은 나에게 연락하는 자체로 용기를 냈을지도 모른다. 그것조차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런 동생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도 든다.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내 뜻대로 안 되는 나의 상태에 나조차도 답답하고 화가 났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돼버린 걸까.


우울증이 지속되던 긴 시간 동안 동굴로 들어가 스스로 갇혀 지냈다. 가장 안전할 수 있는 곳에서 나 혼자. 내 기분이 오르락내리락 미친 듯이 널뛰지 않게끔 아무런 자극도 받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외부와의 모든 것을 차단하면서 말이다. 저 밑 끝까지 떨어지는 깊은 우울감이 너무 힘들어서 그나마 견딜만한 우울감으로 하루를 버틸 수 있게끔 무던히 애썼다.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을 대하고, 만나는 것이 무서워졌다. 그게 누구라도 말이다. 내가 어딘가 고장이 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한순간에 가장 가까운 가족이 불편하고, 무서워질 수 있는 걸까. 이제는 가족은 물론 친구, 가까운 지인들 그 모두와의 연락이 내게는 공포로 다가온다. 이렇게 점점 세상으로부터 멀어지는 건가 싶어 때로는 겁이 난다. 이대로 영영 혼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이다. 그러면서도 철저히 혼자이고 싶다. 나를 그냥 내버려 두면 좋겠다. 이 양가감정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걸까.


어쩌면 내가 이렇게 아프게 된 원인에 그들이 일조했다는 생각 때문인 건지도 모르겠다. 켜켜이 쌓여온 힘들었던 지난날 속에 가장 크게 자리 잡은 건 가족, 친구라는 이름으로 상처받았던 과거의 나였다. 아직도 그 과거 속에 머물러있는 상처 난 영혼이 자꾸만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도록 바짓가랑이를 붙잡는다.


'이리 와, 넌 아직 아픈 과거 속에 머물러야 해.'


그럼에도 한번 더 주치의선생님의 말을 떠올렸다. 그들 중 누구도 내 아픔을 가볍게 여기지 않을 거라는 말. 어쩌면 이 말을 의심할 여지없이 믿고 싶었던 것도 같다. 그래야 내가 조금은 덜 아플 테니까.  


그리고 다음 날, 용기를 내어 동생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오늘 점심 먹자며. 누나 집에 올 거야?"


동생은 반가운 목소리로 한걸음에 달려왔다. 그리고 제 손으로 직접 김치볶음밥을 해줬다. 김치볶음밥은 맛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슬펐다. 동생 앞에선 늘 그렇듯 웃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프다. 그리고 그날 이후, 다시 동굴로 돌아왔다. 여전히 그들의 연락이 무서워 전전긍긍하고, 혹여나 진동이 울리면 불안해져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그리고는 또다시 마음속으로 수백 번을 되뇌었다.


'제발 나 좀 혼자 내버려 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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