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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설 Jul 30. 2023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은 누굴까

누구라도 원망하고 싶던 어느 날에

누구라도 원망하고 싶던 어느 날에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은 누굴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내 마음에 난 상처의 시작점. 누군가를 원망해서라도 지금의 불안과 우울과 죽음의 충동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지는 그런 날이었다.


그런데 왜인지 슬프게도 자꾸만 가족들의 얼굴이 스쳐간다. 가장 사랑하고, 가장 가까운 존재. 가족.  


아빠와 이혼 후 생계를 이유로 자식들을 외할머니 집에 맡겨버린 엄마, 할머니집에 같이 살면서 늘 불편하고 눈치 봐야 했던 이모들, 보러 온다고 약속해 놓고 20년이 넘도록 연락 한 번 안 한 매정한 아빠. 어린 나의 세상에 존재했던 어른들은 하나같이 상처를 준 사람들뿐이었다.


열 살이 되던 해에 할머니 손에 맡겨졌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결정된 예기치 못한 삶의 시작이었다.


마치 사고 같았던 부모님의 이혼은 내 인생의 많은 것들을 바꾸었다. 너무 버겁고, 힘들었던 이모들과의 생활, 엄마가 곁에 없다는 불안과 두려움, 어린 동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까지. 고작 열 살인 내가 짊어져야 하는 것들이었다. 늘 밝고, 구김살 없던 나는 점점 주눅 들고, 자꾸만 눈치 보고, 자존감에 구멍이 난 그늘진 사람이 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때부터 내 아픔이 시작된 것 일지도 모른다. 어린 나이에 그 많은 일을 겪고도 떼쓰거나, 울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우리 집에 가지 못하고 할머니 집에서 살아야 하느냐고, 왜 친구들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거냐고, 왜 엄마랑 떨어져서 이 외로운 곳에 남겨져야 하는 거냐고. 엄마에게, 그리고 그 누구의 어른에게도 묻지 않았다. 내가 울지 않고,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이 엄마를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의 그림자만 따라다니며 눈치를 살폈다. 울어야 할 때 울지 않고, 물어야 할 것을 묻지 않고, 떼써야 할 때 떼쓰지 않으며. 그냥 그렇게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했다. 열 살의 나는 입을 꾹 다문채로 말이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마음의 문이 닫혔다.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았고, 속으로만 끙끙대며 내 몸만 못살게 굴었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힘든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했다. 그래서 늘 외롭고, 혼자였다. 가족들에게는 더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몸 여기저기가 아파 응급실에 실려가는 것만이 힘들다는 내 표현의 전부였다. 누구에게도 편히 기댈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제와 생각했다. 차라리 그때 나는 떼쓰고, 더 많이 울고, 계속 물었어야 했다고. 그렇게 더 표출하고, 아프다고 말했다면. 그랬더라면 지금과 조금은 달랐을까?


열 살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지긋지긋한 상처와 아픔은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몸과 마음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우울함과 무기력, 죽고 싶다는 충동과 자해, 시도 때도 없는 불안장애로. 자꾸 과거의 기억이 현재를 잡아먹는다. 나를 아프게 한 사람들을 곱씹게 되고, 이제 와서야 부모를 원망하고, 내 아픔에 일조한 가족들에게 어깃장이 난다. 목소리도 듣기 싫고, 얼굴도 보기 싫다. 내가 이렇게 돼버린 것은 나에게 아픔을 준 모든 이들의 합작품 같다.


어릴 적 내 아픔의 시발점이 된 나에게 처해진 상황들, 눈치 보느라 화장실도 제때 못 가고 혼자 끙끙대던 수많은 밤, 엄마 없이도 혼자 어린 동생을 지키기 위해 애썼던 외로운 날들, 그럼에도 손자들 키우느라 고생하신 할머니 생각에 여태껏 꾹꾹 눌러 담으며 참고 살았던 오늘날까지.


나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버겁고, 아팠다.


그리고 그보다 더 아팠던 것은 그 많은 날을 입 꾹 다문채 살아온 나 자신이었다. 엄마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늘 이해했으면서 정작 내 마음은 조금도 돌봐주지 못한 나, 가족에게는 단 한 번도 원망 섞인 말을 하지 않았으면서도 스스로에게는 '이렇게 힘들 바엔 그냥 죽어버려.' 라며 수백 번 놓아버렸던 나 자신. 이렇게 무심하게 나를 방치하던 사이, 마음은 이미 오래전 열 살의 나이에 멈춰져 있었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어쩌면 누가 나에게 아픔을 주었는지 찾으려 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인지도 모르겠다. 내 아픔의 시작이 어디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직도 그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벗어날 마음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를 과거의 상처에 던져버리는 것이다. 현재를 살지 못하게 하고 미래를 꿈꿀 수도 없게 만들어 오래도록 과거에 옭아매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계속해서 과거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며 아플 작정인가 보다.


그럼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은 결국 나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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