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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유니온 Nov 09. 2021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

불안정한 현재와 막막한 미래

모든 사람이 첫 일자리, 첫 노동에 대한 기억이 있다. 좋은 일 경험을 하신 분들도 계실 테고, 때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절일 수도 있다. 전자는 아주 운이 좋은 경우가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청년들이 첫 일자리에서 업무적으로 혹사를 당하기도 하고, 크고 작은 일에 자책을 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시기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고 살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트라우마로 남기도 한다. 그저 흘러가는 시기라고 하기에는 첫 노동의 상처가 주는 아픔의 크기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간이 지난 후 과거의 나한테 전부 내 잘못은 아니었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던 인터뷰 참여자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Q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A : 안녕하세요. 저는 34살이고, 현재 서대문구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직업은 디자이너입니다. 시각 디자인 쪽이고 웹이랑 광고 쪽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Q : 하시는 일에 대해 조금 더 알려주세요. 

A : 일을 다시 시작한 지는 3개월 정도 된 것 같아요. 처음 이쪽 일을 시작했을 때는 광고 회사로 들어갔어요. 홍보물이나 책자 같은 광고물을 위주로 만들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웹 디자인 쪽이 일자리가 더 많아서 이쪽으로 진로를 바꿨어요. 


Q : 현재 하시는 일을 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

A : 예전에는 광고 회사랑 건축 회사에서 똑같이 브로셔, 책자, 명패, 인테리어 같은 디자인을 하는 사무직이었어요.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까 대학원에 가서 제 분야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일하다가 대학원에 진학하고, 다시 취업을 하려고 했는데 코로나19가 터져버린 거예요. 그래서 어디로 가야 될지 고민하면서 무직으로 지내다가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쉬게 되었어요. 


Q : 코로나19로 쉬게 된 상황이 궁금해요. 어려움은 없으셨어요?

A : 일단 제가 이렇게 오래 쉬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대학원 졸업 후에 취직해서 해보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그런 게 깨져버렸어요. 계획했던 것들이 틀어진 게 많아서 초반에는 좀 우울했어요. 그래도 나중에는 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생각하며 지냈던 것 같아요. 


Q : 쉬고 있을 때 경제적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셨어요?

A : 저도 1인 가구이다 보니까 소득이 필요했어요. 일단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프리랜서로 외주 받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했어요. 아르바이트 소득은 너무 적으니까 생활비를 줄이면서 버텼죠. 제가 공부하고 해왔던 일들이랑은 아예 상관없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더라고요. 


Q : 코로나19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니까 불안하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했을 것 같아요. 

A : 어느 직장을 가야 될지 모르겠고, 제 눈이 점점 낮아지게 되니까 많이 우울했어요. 우울감이 몇 개월이면 그래도 다행이었는데, 한 1년 간 너무 힘들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막막함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고민을 상담해줄 사람이 없는 게 아쉬웠어요. 주변 모두가 침울한 상태여서 서로 북돋아주며 버틴 거죠. 내가 힘든 것을 상대방한테 이야기하기는 어려워요. 그 사람도 힘든 상태일 게 분명하니까 그냥 저 혼자 속으로 삭혀야겠다 싶었어요. 다른 방법은 못 찾았어요.



                        

Q : 프리랜서로 일하실 때는 어디서 일감을 구하시나요?

A : 저는 주로 대학원에서 소개받아서 일을 해요. 교수님들 추천도 있고, 주위에 있는 친구들도 창업을 하거나 사업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도와달라고 요청을 하는 편이에요. 


Q : 외주 받아서 하는 일에도 어려운 점이 있을 것 같아요.

A : 일단 고정 급여가 없다는 게 단점이에요. 제가 돈이 필요한 시점이 있는데, 대금을 받을 수 있는 시기와 안 맞을 때가 많아요. 그리고 저는 지금 무조건 일을 받아야 되는 상황이다 보니까 점점 워라밸이 사라지고 있어요. 주변에서 일을 줄 때는 감사하게 받는데, 막상 제가 일을 하게 되면 밤을 새야 되는 상황들이 많아지니까 일상적인 생활이 깨지는 게 힘들었어요. 


Q : 워라밸이 안 지켜지는 것도 힘들 것 같아요. 그리고 외주로 일을 하면 4대 보험 같은 사회보험도 가입을 못 하잖아요.

A : 맞아요. 그래서 대학원 졸업하고 직장을 다녀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취업을 했는데 그곳에서 4대 보험으로 장난을 치는 거예요. 4대 보험을 안 들어주는 대신에 월급을 조금 더 올려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또 수습기간에만 가입 안 하고 이후에는 가입시켜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여러 곳에서 이렇게 4대 보험을 가입시켜주기도 하고 안 해주기도 하면서 장난을 치더라고요. 그래서 직장을 다니다 말다 계속 반복했어요. 이 기간이 좀 길었어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도 가입을 안 해줬다고 하더라고요.  


Q : 직장생활을 막 시작했던 때 일 경험도 들어보고 싶어요. 

A : 대학교를 졸업하고 제가 어떤 일을 해야 될지 몰랐던 것 같아요. 어디를 갈까 고민하고 있다가 받아주는 데만 있으면 감사하게 다녀야겠다 생각하고 입사했어요. 그렇게 디자인 회사에 취업해서 3년 정도 일을 했어요. 그런데 당시 그 회사도 그렇고 다른 회사들도 그렇고 퇴근을 안 시키더라고요. 3일에 한 번 집에 가는 정도였어요. 그리고 이게 당연한 문화처럼 여겨졌어요. 맨날 새벽 4시에 퇴근하고 3시간 자고 다시 출근하는 게 일상인 거죠. 


Q : 많이 지쳤을 것 같아요. 

A : 맞아요. 이런 삶이 계속 반복되니까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이 맞나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주위에 저보다 더 처우가 안 좋은 곳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많은 거예요. 그래서 당시에는 ‘아 이런 게 당연한 거구나’ 생각했던 것 같아요. 


Q : 그런데도 3년이나 일하셨던 이유가 있을까요?

A : 디자인 쪽에서 3년만 버티면 월급이 많이 오를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3년만 버텨라 이런 말을 계속 들어서 3년만 버티자는 마음으로 계속 다녔던 것 같아요. 그렇게 버티니까 다음에 갈 수 있는 곳이 조금씩 생겼어요. 그런데 또 한 번 고비가 왔는데요. 다음 회사에 가서도 새벽까지 야근하고, 매일 같이 사람을 태우는 작업 환경을 반복해야 되는 건 아닐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대학원으로 진학한 것도 있어요. 


Q : 지금 돌이켜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A : 대학원을 진학하고 시간이 지나고 나서 시각이 좀 넓어졌다고 생각해요. 그때는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중요해 보였는데, 지금은 조금 넓게 보려고 하거든요. 그때는 직장에서 야근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생각했어요. 지금은 내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왜 그렇게 했을까 싶어요. 그렇게 일하지 않는 곳도 있을 텐데 그런 곳을 찾아볼 생각을 못 했던 게 아쉬운 거죠. 지금이었으면 더 좋은 데를 찾아봐야겠다 생각했을 것 같아요.                    


Q : 그럼 3년 동안 4대 보험은 가입되어있었나요?

A : 아니요. 당시에는 제가 4대 보험이 뭔지 몰랐어요. 그때도 4대 보험을 가입하지 않으면 월급에 조금 더 얹어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는 어리다 보니까 많이 받는 게 최고다 생각하면서 가입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나중에 퇴사하면서 실업급여를 알아보면서 보험이 중요한 거였다는 걸 뒤늦게야 깨달았어요. 


Q : 4대 보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A : 일단 실업급여를 못 받았을 때 많이 충격을 받았어요. 그리고 직장인 대우 카드나 대출 같은 것도 해당이 안 되는 거예요. 저도 이제 슬슬 나이가 차고 이러면 생각을 해봐야 될 것 같은데, 당시에는 제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Q : 주변에서 디자이너 일을 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A : 보통은 평범한 일이나 안정적인 일을 하라고 했어요. 제 주위에 있는 친구들이 그렇게 살고 있을 때 저도 안정적인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나 싶긴 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못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제 적성에 안 맞을 것 같기도 하고요. 제가 원하는 길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디자인 쪽으로 왔을 것 같아요. 


Q :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신고를 하거나 도움을 받기는 어려웠나요?

A : 문제제기를 해본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니까 못 해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으냐고 얘기하면, 마음에 안 들면 신고해라 이런 식으로 나오더라고요. 신고를 해보려고 했는데 너무 복잡해서 못 했어요. 어렸을 때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내가 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리고 신고하면 나한테 불이익이 있지는 않을까 싶어서 못한 것도 있어요.


Q : 불안하거나 불안정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을까요?

A : 불안하다는 걸 점수로 하면 10점 만점에 5점 정도 되는 것 같아요. 프리랜서일 때나 직장에서 일할 때나 디자이너는 항상 약자인 것 같아요. 내가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부담감이 있어요. 제 주위에 있는 친구들도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고 있어요. 노후까지 보장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도 있고요. 


Q : 일이나 노동이 갖는 의미가 있을까요?

A : 일자리는 기본적으로 급여를 받는 것뿐만 아니라 저 스스로의 발전 가능성이 있는 곳이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가 거기에서 소속감을 느끼면서 무언가 일을 하는 즐거움 같은 게 있으면 좋은 일자리일 것 같아요.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Q : 혹시 과거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세요?

A : 조금 더 자신감을 갖고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과거의 저는 자기 자신을 많이 깎아내리고, 문제가 생기면 나한테서 문제점을 찾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야근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저한테 있었던 모든 일들 중에 절반은 탓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당시에는 어떤 게 정답일지 너무 몰랐어요. 




※ 인터뷰 참여자의 익명성 보장을 위해 개인 정보와 신상을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은 편집 및 각색했습니다.


※ 인터뷰의 문장은 참여자의 말투와 사용하는 단어의 어감을 살릴 수 있는 문장으로 편집했음을 밝힙니다.


※ 본 인터뷰는 서울시의 <청년프로젝트>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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