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벅터벅-
오래된 나무바닥이 깔려있는 학교의 복도를 걸어가고 있다. 삼선의 슬리퍼 사이로 까만 양말을 신은 발가락이 삐쭉 튀어나와서 인사한다. 축축하게 젖은 양말을 따라 발목까지 차갑게 물방울이 맺혀있다. 걸을 때마다 삐그덕 거리는 나뭇바닥 소리와 물컹하게 물이 질척하게 나오는 듯하는 발바닥까지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민아야”
누군가 나를 불러 세웠다. 왼손에는 아직도 물이 떨어지는 노란색 장우산을 들고 있던 나는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면서 빗물을 촤르르하고 떨어뜨린다. 조심성 없이 뒤를 돌은 것이 교복 치마까지 젖어버리게 만들었다.
“비가 아침부터 오고 난리야.”
나를 불러 세운 친구의 짜증 섞인 목소리와 나와 비슷한 물에 젖은 생쥐 꼴을 보니 퍽하고 웃음이 나왔다. 친구가 내게 걸어오는 동안 우산에서 튄 물을 털털 손으로 털어냈다.
해가 뜨지 않은 아침 8시, 밖은 어둑어둑한데 교실에 형광등도 눅눅하게 비추고 있다. 교실이 눅눅하든 찝찝하든 축축하든 상관없이 여전히 학생들은 아침부터 신이 나있고, 왁자지껄 각자의 이야기를 하기 바빴다.
나는 1교시 수업을 위해 가방을 정리하고, 교실 맨 뒤에 있는 사물함에 걸어갔다. 사물함이 교실 뒤편 벽면을 꽉 채워있고, 10번째 줄 2번째 사물함이 내 사물함이다. 조그마한 3개짜리 분홍색 자물쇠가 달려있고, 비밀번호는 486.
딸깍-하고 사물함 열쇠를 맞추고 사물함의 문을 여는 순간 팡-하고 교실의 조명 하나가 불꽃을 날리며 터졌다. 쨍한 소리였던가, 팡하는 소리였던가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단지 그 소리에 놀란 학생들의 비명소리가 난무했을 뿐이었다. 아이들의 비명소리, 아수라장이 된 교실이었지만 나는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조명이 터진 일보다 내 앞에 펼쳐진 ‘이것’을 본 순간 아무런 소리도 움직임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완전히 돌이 되어 내 사물함 속에 있는 ‘이것’의 정체를 받아들이는데 온 힘을 다해야만 했다.
‘이것’은 매일 나와 밥을 먹고, 수업을 듣고, 하교를 하고 떡볶이를 먹던 지희... 지희였다.
정확히는 지희의 머리만 잘려 있었다.
지희는 눈을 뜬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