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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치 May 03. 2024

옆집남자-1

소설

"썩었네, 썩었어."


  세수를 하기 위해 거울 속에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봄에 끝자락이 되자 피부가 건조하게 올라온 게 얼굴 표면이 거칠고, 뾰루지가 걸리적거리는 콧볼 옆에 자리를 잡고 삐쭉하고 솟아올랐다.


 그뿐이랴 바쁜 일상을 살다 보니 어느새 길어진 머리카락도 부스스하고 덥수룩하게 되어있었다. 관리가 전혀 되지 않은 채 겨울이 지나갔다.


 아니, 겨울만 지난 게 아니라 봄도 지나가고 있다. 어쩐지 연애가 안되더라,라는 생각을 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미용실을 먼저 가자.”  

   

 마침 주말이고, 10시가 조금 넘은 아침이니 어느 미용실이든 예약은 될 것이다. 집에서 10분 거리의 미용실이 11시 타임이 비었고, 예약을 한다.


대충 씻고, 밥을 먹고 나가야지.라는 알찬 계획으로 빠르게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머리칼에서 뚝뚝 물이 떨어지고, 수건으로 대충 후다닥 머리를 감 쌓다. 이제 머리 말리기만 하면 된다. 그때 머리칼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발가락 사이로 떨어지면서 발을 적신다.


 톡톡- 톡톡톡- 물방울이 떨어지는 멍하니 바라본다. 무슨 감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멍 해지는 게 물방울이 맺히고, 떨어지는 순간이 몇 초가 되고, 그 물방울이 톡 하고 표면에 닿아 떨어질 때를 기다린다.


 징- 하고 핸드폰이 울리며 알림이 왔다. 핸드폰 화면을 보니 예약 확정 알림과 10시 37분이 떠있다. 10분을 넘게 물방울에 집중한 것이었다.    

 

“아, 망했네.”     


 미용실까지 가는데 10분이다.


그러면 최소 50분에는 나가야 하는데 머리도 말려야 하고, 시간이 없다. 밥은 무슨 밥이냐, 머리를 대충 말리고,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뛰쳐나가야 한다.


어찌어찌하여 52분에 준비를 마치고 운동화를 꾸겨신고 현관문을 탁하고 잡아 열었다. 열려고 했다. 근데 안 열린다.     


“뭐야, 왜 안 열려?”     


띠릭- 소리만 나가고 현관문이 바위처럼 꿈쩍도 안 한다. 처음에는 바람 때문인가 싶었는데 두 번째 세 번째 똑같이 문은 열릴 생각을 안 했다.


에잇 모르겠다. 현관에서 세발자국 정도 뒷걸음질 치고, 기합을 넣고 현관문을 향해 온몸을 던졌다.      



“좀!! 열려라!!”     



퍽-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휘청하고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넘어졌다. 넘어지면서 아파야 하는데 오히려 침대에 넘어진 것처럼 폭신하다. 시야에 보이는 건 바닥이 맞다.      



“으.. 아파요. 내려와요”     



처음 듣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 폭신하다 느낀 것은 모르는 성인 남자의 품이었기에 그랬던 것이었다.


그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급하게 바닥을 짚고 일어나려 했는데 실수로 남자의 팔을 집고 일어났다.     


“악”     

그가 짧은 신음소리를 내며 아파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문이 안 열려서 제가 힘으로 문을 열다 보니까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하고, 제가 멍청하게 문을 열고 나왔어요. 너무 죄송해요.”     


무슨 소리를 하고 있냐, 내 집 현관문 앞에 누가 서있을 걸 내가 어떻게 알고 문을 열어? 어버버 하며 사과를 했다. 그는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이 집 살아요?” 그가 물었다.

“... 네”

“여기 사람 안 사는 집인 줄 알았는데, 으.. 아프네요.”


내가 넘어지면서 오른쪽 팔로 나를 받아줬는지 그는 왼손으로 오른쪽어깨와 팔을 문지르며 아픈 티를 냈다.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병원 가실래요?"

“됐고요, 괜찮으니까 사과 그만하세요.”     


그는 키가 180은 돼 보였고, 몸은 근육질에 반팔과 생지 청바지를 입고 머리는 깔끔하게 포마드 되어있었다. 갈색의 얇은 안경테를 쓰고 있는 게 딱 대학생 같은 느낌이다. 진한 이목구비와 어우러지는 정리가 잘된 머리칼과 눈썹이 도드라졌다. 한 마디로 잘생겼다.

    

“저.. 진짜 괜찮으세요?”

“네, 안 괜찮아요. 지금 바빠요?”     



뭐야, 괜찮다며 왜 갑자기 안 괜찮대..! 혹시 때리려나? 덩치가 커서 맞으면 아플 것 같다.


 도망쳐야 하나? 아 어떡하지? 잘생긴 사람도 여자 팰 수 있을 수도있잖다고 생각했다.


“.. 아뇨.. 바쁘.. 지는 안.. 아! 미용실!”     



미용실 예약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건데,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급하게 핸드폰 시계를 켜서 보았다. 10시 55분이다.      


“미용실 가야 돼요? 아, 아쉽네.”


“예? ”


“밥이라도 사요, 저는 안 바쁘니까 미용실 끝나고 아, 번호 일단 번호 줄게요. 정식으로 인사할게요, 저는 옆집 살고 있고, 요기 앞에 대학교 다니고, 25살이에요. 이름은 강철이예요. ”


“어.. 어.. 반가워요.. 전 여기 살고, 27살이고, 이예은이에요.”  

  

어정쩡하게 대답하자 그가 손을 내밀었다. 당연히 악수를 하자는 건가? 싶어 그 손을 잡았다.

보통 악수를 하면 몇 초 동안 가만히 있는 건가? 그는 내 손을 잡더니 몇 초가 지나도 손을 놓지 않았다.


“저..”

“아, 반가워요. 핸드폰 달라는 말이었는데?”   

  


얼굴이 시뻘게지는 게 느껴지면서 허겁지겁 핸드폰을 내밀었다. 핸드폰을 받으며 땡큐-라고 말하며 번호를 저장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다시 내게 핸드폰을 쥐어주며 어깨를 살짝 터치했다.  

   

“여기요, 근데 바쁘지 않아요?”

“아, 맞다. 고마워요! 죄송해요! 안녕히 가세요!”     


이미 시간은 11시가 넘어갔고, 급하게 뛰어간다고 한들 늦는 건 똑같지만, 이 상황에서 벗어날 기회에 고개를 끄덕하며 어정쩡한 포즈로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달려갔다.


뒤에서 그가 어떠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지는 확인할 용기도 안 났다. 내 손에 꽉 쥐어진 핸드폰 화면에 그의 이름 세 글자와 번호가 반짝이는 것을 안 것은 엘리베이터에 안착했을 때였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게 뛰어서 인지 설레서인지 모르겠지만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이게 무슨 판타지 같은 일이야? 실화야?”  

   

핸드폰 화면에 강철을 지워버리고, 제일 친한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야만 했다.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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