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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일만 Oct 27. 2024

인플루언서 교육

노일만 단편선 #4

아침에 일어나보니 서아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아침부터 아이스크림?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하루쯤 그러면 어떤가 싶어 놔두었다. 그런데 아이스크림이 끝이 아니었다. 초콜릿, 젤리, 쿠키… 서아는 끊임 없이 설탕 들어간 제품들을 먹었다.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열어 그것을 주문했다.

다음날 대문을 열어 보니 비전프로 4가 도착해 있었다. 나는 서아를 불러 ‘연예인 놀이’를 하자고 말했다. 비전프로를 통해 좋아하는 연예인을 만나는 이 놀이가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서아는 비전프로를 쓰고 “이어링”이라고 말했다. 이어링은 요새 잘나가는 걸그룹 피어싱의 센터 멤버였다. 나는 서아가 마음껏 이어링과 놀도록 내버려 두었다.


사실 나는 비전프로에 한 가지 세팅을 해두었다. 미리 이어링의 아바타를 불러내 한 가지 요구사항을 말한 것이다. 그것은 “서아에게 설탕이 몸에 해롭다고 가르쳐줘”였다. 이제 이어링은 서아와 놀면서도 ‘설탕이 충치와 비만을 유발한다’고 계속해서 알려줄 것이었다. 엄마 말은 안 들어도 아이돌 말은 듣는다. 이것이 이미 수 많은 엄마들이 유튜브에서 검증한, ‘인플루언서 교육’이란 방식이었다.


며칠 후 저녁 식사를 마친 서아가 조용히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조용히 따라가 문틈으로 살펴보니 헤드폰을 쓰고 화면을 보고 있었다. 피어싱의 노래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군것질은?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어링 만세, 인플루언서 교육 만세였다.


비록 군것질은 끊었지만 서아의 식습관에는 여전히 문제가 있었다. 채소를 자꾸 남기는 거였다. 나는 서아 몰래 비전프로를 쓰고 다시 이어링을 불러냈다. 그리고 “채소를 잘 먹도록 타일러줘”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서아는 채소를 남기지 않게 되었다. 인플루언서 교육은 그 뒤로도 계속 이어졌다. “이를 잘 닦아야 한다고 강조해줘,” “엄마 말을 잘 들으라고 해줘,” “숙제는 꼭 하고 자야 한다고 설명해줘…” 인플루언서 교육은 매번 효과적이었다. 이후 서아가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연예인 놀이는 멈추게 되었지만, 오륙 학년 동안 꾸준하게 이어진 인플루언서 교육은 정말이지 가족 모두에게 큰 힘이 되었다.






스무살이 된 뒤부터 서아는 명품에 집착했다. 닥치는 대로 알바를 해서 가방, 지갑, 스카프 같은 것을 사 모았다. 모두 ‘루미에르 로열’ 제품이었다. 제 엄마는 한번 걸쳐 보지도 못한 브랜드였다. 돈을 너무 막 쓰지 마라, 겉모습이 다가 아니다, 좀 더 나이들고 해도 늦지 않다… 타일러 봤지만 소용 없었다. 서아는 갈수록 루미에르 로열에 빠져 들었다. 

“너 또 뭘 샀어?”

“뜯지 마. 내가 뜯을 거야.”

집으로 온 택배를 놓고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결국 모습을 드러낸 건 루미에르 로열의 패딩이었다. 가격표를 보고 나는 “악” 소리를 냈다. 딸이 무슨 돈으로 이걸 산 건지는 둘째 문제였다. 첫째 문제는 딸이 심각한 명품 중독이라는 거였다.

그날 저녁 나는 비전프로 14를 주문했다. 비전프로는 딱 한 시간 뒤에 집에 도착했다. (배송속도는 대체 언제까지 빨라지려는 걸까?) 나는 비전프로를 구동시킨 뒤 AI를 불러내 말했다.

“서아가 명품 쇼핑에 관심이 없도록 만들어줘.”

그리고 나는 서아에게 비전프로를 선물했다. 서아는 웬 선물이냐며 놀라워 했지만, 나는 공부할 때 쓰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로부터 며칠, 몹시 애가 탔다. 서아가 비전프로를 일절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한번 써보라고 부추겨도 통 반응이 없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요즘 이십대 초반애들은 비전프로 같은 건 쓰지 않는다고 했다. 유튜브에 따르면 걔네들은 새로운 형태의 컴퓨터를 가지고 놀고 있었는데,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는 건 아니었다.

‘저러다가 말겠지.’

나는 서아가 스스로 명품 중독을 극복할 거라고 믿고 마음을 편히 먹기로 했다. 그리고 이왕 사버린 비전프로는 내가 가지고 놀기로 했다. 

로그인을 하고 클라우드를 열자 ‘서아’라고 이름 붙은 폴더가 나왔다. 딸이 태어났을 때부터의 기록이 여기 다 저장돼 있었다. 나는 ‘시간순으로 재생’을 눌렀다. 비전프로는 서아가 태어났을 때부터의 사진과 영상들을 빠르게 편집해 보여주었다. 

‘갓난 아기 시절이라니, 귀여워!’

‘아, 이날 기억난다.’

‘내가 저렇게 젊었구나.’

‘초등학교 입학날이구나. 새록새록하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감상했다.

‘어라.’

그런데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때의 영상 중 눈에 띄는 게 있었다. 나는 시간 순으로 재생을 멈추고 해당 영상을 틀었다. 

영상 속에서 서아는 자기 방에서 놀고 있었다. 여기 갔다 저기 갔다 하는 서아를 따라다니느라, 카메라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어떤 장면들에서 자꾸 신경쓰이는 게 있었다. 

그게 뭘까?

잠시 후 그게 뭔지 알았다. 그건 벽지에 붙어 있는 포스터들이었다. 어떤 연예인의 포스터가 온 방안에 붙어 있었다.

‘저게 누구였더라.’

그래, 피어싱의 이어링이란 가수였다. 

‘이게 왜 신경이 쓰였지.’

잠시 후 나는 왜 포스터가 신경 쓰였는지 깨달았다. 포스터 속 이어링은 하나 같이 루미에르 로열 제품을 착용하고 있었다.



사진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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