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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선 Oct 18. 2024

가위. 바위. 보.

배려를 만났다.

  여섯 명이 모였다. 여섯 명이 공동체활동을 시작하자며 연대가 주는 장점을 말했다. 좋았다. 그렇게 공동체가 결성되고 첫 번째 프로젝트를 논의한다. 나라를 구할듯한 기세로 여기저기서 아이디어를 쏟아 내더니 거창한 프로젝트가 완성되었다. 이제 프로젝트를 총괄 지휘할 사람만 정하면 된다. 일명 회장이 될 수도 있고 기획장이 될 수도 있는 자리. 서로 눈치를 본다. 공동으로 따라가면 밥숟가락만 올리면 되는데 총괄은 왠지 부담스럽고 힘들고 귀찮을 수 있어 서로 미룬다. 일을 잘하는 A에게 “A님이 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A님을 추천합니다” 그러자 A는 사내에 중요한 일이 있어 다음에 하겠다며 거절했다. “저는 B님이 제일 연장자고 섬세하시고 그동안 회장직을 많이 하셨으니 B님을 추천합니다” 그러자 B님은 그동안 회장직을 많이 했었고 제일 연장자니 거절하겠다 후배들이 하라고 했다. 후배는 경험이 없어 못하고, 나이가 제일 어린 사람은 하고 싶지만 능력이 없다며 여섯 명 모두 다 그럴듯한 이유로 회장자리를 거절했다.     

  나라를 구할듯한 기세는 순간 시들하고 조용해졌다. 조용해진 만큼 멤버들의 마음은 요동을 친다. ‘어떡하지’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던 후배가 “그럼 다 하기 싫어하지만 맡으면 다 잘할 멤버들이니 가위바위보로 공평하게 정해요”라고 했다. 성경에도 나오는 운명을 가르는 불멸의 칼날. 가위, 바위, 보로 우리의 회장을 정하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운명에 맡기나 보다. 모두 주먹을 불끈 쥐고 가위바위보를 한다. 모양새는 쑥스럽지만 운명에 맡기자 하니 할 수 없다. 몇 번의 가위바위보를 최고의 집중력으로 했고 하나씩 희비가 가리기 시작했다. 마지막 세 명만 남았다. 나도 남았다. 설마 나일까? 설마 설마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어차피 할 거면 자진해서 한다고 할 걸. 가위바위보에 져서 회장이 되면 모양 빠지겠지. 머리는 복잡게 돌아가고. 주먹은 무의식적으로 힘차게 내리친다 가위바위보. 힘껏 가위를 냈다. 상대방들은 보를 냈다. 휴~ 살아남았다. 운명의 신은 나의 편을 들어줬다. 호호 난 역시 운이 좋다.     

  이제 최고 연장자와 제일 바쁜 후배만 남았다. 연장자가 회장직분을 맡으면 우리는 든든하지만 많이 힘들어할 것이 뻔하다. 요즘 무척 건강에도 적신호가 온다고 조금 전에도 건강 걱정을 했다. 어떡하지. 살짝 눈치를 본다. 또 바쁜 후배도 마찬가지다. 3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평가 기간이고 다른 조직에서도 장을 맡고 있으니 후배가 져도 걱정이 살짝 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운명은 우리 힘으로 결정할 수 없는 걸. 운명의 여신이 장난을 칠지, 축복을 줄지는 아무도 모르니 숨죽여 두 사람의 손만 바라본다. 관망이다. 나는 아니니까? 가위바위보가 시작된다. 

                                                                                 

                                                          가위바위

                                                                                  

  그때였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서로 손을 내미는 순간 “그냥 제가 할게요.” 차마 최고 연장자에게 그동안 이런저런 일을 많이 하신 분께, 건강까지 염려되는 분께, 정말 하기 힘드실 분을 이기고 싶지 않았나 보다. 놀랐다. 순간 모두가 멈췄다. 생각조차 못 했다. < 배려 >다. 늘 노래하듯이 내뱉은 말. 배려를 목격했다. 이런 거구나 이렇게 배려가 오는구나. 배려를 보자  부끄러웠다. 민망했다. 난 왜 못했을까? 훈훈하게 회장은 정해지고 모임은 끝났지만 못내 아쉬웠다. 최고 연장자보다 건강도 좋고, 바쁜 후배보다 여유도 있고, 주신 능력도 있는데. 왜 먼저 배려하지 않았을까? 돌아본다. 품격 있게 살고 싶다고 했고, 격 있게 살고 싶은 것이 중년이 목표라고 입술로 노래했다. 선한 말씨를 사용해야겠다. 늘 흐트러지지 않게 바른 자세로 앉아야겠다. 정제된 단어만 사용하겠다. 나의 롤모델이신 노작가가 보여 준 품격을 보고 메모해 둔 격이 있는 행동요령이었다. 부끄러운 메모다. 이런 기술로 만들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격, 품격은 마음 깊은 곳에서 많은 성찰과 넉넉한 인품과 욕심을 비울 수 있는 여유에서 나온다. 오래 묵은 장 맛처럼 깊은 뿌리를 내린 큰 나무의 바람처럼.      

   그 후 배려님을 볼 때마다 다시 보인다. 조금은 뚱뚱하고 조금은 시골스럽게 생겼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여유 있고 배려심 높은 훌륭한 인품만 보인다. 이런 분이 공동체의 회장이 되었다. 운명의 여신은 우리 공동체를 선택했고 우리는 좋은 회장님과 함께 좋은 일만 하면 된다. 물론 나는 좋은 일을 하면서 회장님을 닮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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