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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말 Sep 05. 2023

콩깍지 속에 콩

콩깍지 속에 콩     


  이르게 수확한 풋콩같이 파릇파릇하던 19살 시절. 나는 겁도 없이 유럽에 갔다.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지, 지중해와 대서양이 어떻게 다른지도 몰랐다. 흐음, 그때 내 머릿속에는 대체 어떤 지식이 있었을까. 지금와 돌이켜보면 용케 살아서 건강하게 돌아왔다는 생각을 한다. 당시 나는 여권 조차 처음 만들었던 처지였으니, 당연히 여행 짐이라고 제대로 챙겼을리 없었다. 장거리 여행에 무엇이 (불)필요한지도 몰랐고, 그렇다고 주변에 세세하게 알려주는 사람도 딱히 없었다. 그래서라고 해야 할지, 나는 대범하게도 작은 캐리어 안에 두꺼운 책을 몇 권씩 챙겨갔다. 기억이 맞다면 소설 ‘다빈치 코드’와 베르베르의 책 몇 권. 당시에 나는 용돈을 받아 여행하는 처지라서 값싼 호스텔에서 묵고 주로 싸구려 현지인 식당에 갔었다. 동네 빵집의 푸석푸석한 빵과 사과 한 쪽을 사다가 대충 공원에서 먹고 온종일 유럽의 골목과 언덕 여기저기를 걸어 다녔다. 그래도 SNS가 없던터라 그런 식으로 여행을 해도 딱히 처량하다거나 처연한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단지 어른이 되고 처음으로 멀리 떠나왔다는 해방감만으로도 가슴 깊숙한 곳에서 충만함이 솟구치고 있었고, 그런 끓어대는 감정을 적절히 다스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버거웠던 것이다.     


  지금도 그럴테지만, 당시에 돈이 넉넉치 않은 젊은 여행객들은 호스텔에 많이 모였었다. 오순도순 모여서 정보도 공유하고 와인 파티도 하고, 그간 못했던 한국말도 실컷 하곤 했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19살이던 나는 형누나들의 호기심어린 질문과 질척한 조언의 대상이 되곤 했다. ’타국이 무섭지는 않으냐'’앞으로 한국에 돌아가서는 무얼 할생각이냐'’군대를 가야 한다니 불쌍하다'라는 식의 조언들. 아무래도 여행지니까 다들 뇌와 마음이 끈적끈적 해졌던 모양이다. 10여년 전만해도 아직 공식적인 미성년이 장기간 유럽 여행을 떠나는 일이란 흔치 않았던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것은 마치 성년식 의례와도 같은 것이었다. 물론 나같은 풋내기에게 그 관심이 끝까지 지속되지는 않는다. 내가 맥주 와인도 마실 줄 모르는 샌님이라는 사실을 대충 파악하고 나면, 대다수는 봄철 참새떼처럼 후다닥 흩어져 다른 가지로 날아가버리곤 했다. 어른들에게는 어른들만의 밤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다. 뭐, 사실 그건 또 그것대로 즐거웠다. 숙소로 돌아와 호스텔 이모가 차려주신 저녁 식사를 하고 좁다란 침대에 누워 PMP로 담아온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읽다 잠드는 것이 매일의 일과였다.     


  그런데 내가 조금 이상스럽게 느꼈던 것은, 침대에 누워서 책이나 영화를 보고 있으면 파티를 마치고 거나해진 형들이 늘 한마디씩 충고를 했다는 것이다. 여러 여행지의 음식과 음주에 대한 이야기부터, 일찍 군대에 다녀와야 한다. 좋은 여자는 이런저런 여자다. 하는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가이드로 이어지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다수의 공통된 의견으로는 소설책이나 전자기기(PMP)를 챙겨오는 것은 여행에서 엄청난 공간의 낭비라는 것이다. 여행을 왔으면 현실의 유적들을 봐야지 책 따위를 볼 시간이 어디 있냐고, 진정 여행을 즐길 줄 모르는 멍청한 짓이라는 투로 말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파티를 하던 이들을 불러 모아서는 두꺼운 책을 이렇게나 많이 챙겨왔다며, ‘아직 어려서 뭘 모르’고 ‘해외를 처음 나와본 티’가 난다고 했다. 불 꺼진 방의 삐걱거리는 호스텔 침대 위에서, 천장을 바라보면서 사뭇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역시 해외 여행에 책을 챙겨오는 것은 정말 철없고 미숙한 짓인걸까. 어쩌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여행 자체도 크나큰 낭비일 뿐인 것은 아닐까. 겉으로는 태평한 척 웃어 넘겼지만 어린 자존심에 속으로는 꽤나 상처를 받았었다. 막 열리려던 풋콩은 다시 콩깍지 속으로 굳게 숨어버렸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세상에 대해서 그리고 여행에 대해서 정말이지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나는 살면서 그 뒤로도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사람에게 그런 유의 말을 들어왔다. 만약 그들의 조언처럼 ‘당연한 여행법’이라는 것이 있다면, 세상에는 ‘당연한 사고 방식’과 ’당연한 인생'이라는 것도 있는 걸까. 캐리어에 쓸모 없는 물건을 챙기면 안 되는 것처럼 삶에서 비효율적이고 쓸데 없는 낭비는 최소한으로 줄여 나가야 한다고. 그런 것들을 한데 모아서 사람들은 상식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30대가 된 나는 아직도 어김없이 소설책을 챙겨 여행을 떠난다. 심지어는 점점 더 많이 가져간다. 니트 하나 빼고 책 하나 더. 뭐 그런 식이다. 빠를수록 좋다던 군복무도 20대 후반이 지나서야 마쳤으니 무척 늦은 편이다. 어쩐지 그때 들었던 조언과는 모조리 정반대로만 인생이 흘러온 기분이다. 물론 내가 그들의 말이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 이런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다. 그런 예전의 기억들은 그저 까마득하게 잊혀져 있다가, 어느 날 문득, 여행 가방에 책을 쑤셔 넣으면서 이따금 떠올리곤 한다. 나는 어쩌다 이렇게 많은 책을 챙겨 다니게 됐을까. 그리고 그 사람들은 아직도 여행에 책을 챙겨다니는 것을 비상식적인 일로 여기고 있을까.     


  그러니까 이 글의 결론은, 아마도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스스로 변해 간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근본적인 성향은, 그리고 그 ’근본적 성향‘에서 파생된 무언가는 전혀 바뀌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특성이란, 별일이 없는 한, 시간이 흐르면서 더 강화되고 고착화 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 풋내 나는 풋콩이든, 수확 시기가 지난 완숙콩이든 그것이 언제고 콩인 사실 만은 변함이 없는 것처럼. 그렇다면 결국 변하고 있는 것은 나를 둘러싼 주변의 환경과 그 환경에서 겪게 되는 상황들 뿐인 것은 아닐까. 실은 요즘도 나는 누군가의 생각이 그 뿌리 종자부터 다르다는 것에 놀랄 때가 있다.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의 철저한 강변을 듣고 있으면, 때때로 내가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는 미망에 빠진 기분이 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10년전 그랬던 것처럼 무연히 생각해보게 된다. 아마도 나라는 콩의 알맹이는 스무 살 무렵 유럽 여행을 하던 그때와 여지껏 같은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세상에 사실이란 없고 오로지 사실에 대한 사실만이 있을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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