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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말 Sep 10. 2023

상상 정도는 괜찮지

바도

상상 정도는 괜찮지          


  평소에 나는 조금의 여유만 생기면 습관처럼 이런저런 생각을 하곤 한다. 딱히 거창하거나 복잡한 것은 아니고, 그때그때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해서 공상하거나 간단한 가설을 세우고 무너뜨리면서 하릴없이 시간을 때우는 것이다. 예컨대 출근 시간에 뜬금없는 교통 체증을 맞닥뜨릴 때가 있다. 평소에는 뻥 뚫려 시원하게 내달리던 길이 오늘은 어쩐지 고지혈증으로 고생하는 아저씨의 혈관처럼 꽉꽉 막혀버린 것이다. 그러면 나는, 딱히 할 일도 없으니까, 찬찬히 생각해보게 된다. ‘어째서 오늘은 평소와 다를까?’ 하고. 평상시와 시간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아마도 수요일이라서 그런 것일까. 딱히 논리는 없지만 추측해본다. 어쩌면 도로 공사가 있어서 차선을 통제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다중 추돌이 발생해서 사고 처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저렇게 추측을 하는 사이에 어느덧 흐름은 풀리고 차는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지만 의문은 막힌 혈관처럼 찝찝한 기분으로 남겨졌다. 운전 이야기를 이어서 해보자면. 나는 도로에서 경적을 크게 울리는 사람을 보면 ’뭐야. 오늘 빵빵데이라도 되는거야?'라고 말한다. ‘빵빵 데이’란 내가 멋대로 지어낸 것이니까, 물론 그런 날 같은 건 없다. 그렇지만 당연히 옆에 앉아 있던 여자 친구는 나에게 묻는다. ’빵빵 데이라는 게 뭐야?'’응. 자동차 경적을 빵빵 큰소리로 울리는 날이야'나는 진지하게 대답한다. 흐음, 분명 당황스럽겠죠.     


  혼자서 밥을 먹을 때도 나는 역시 이것저것에 대해서 생각을 한다. 입에 음식물을 넣고 우적우적 씹고 있으면 어느새 머릿속에 틈새가 살짝 벌어지고 어디선가 상념이 흘러 들어온다. 대체 밥을 먹는데 무슨 생각할 거리가 있을까. 밥을 먹고 있는 지금도 시시각각 녹고 있는 남극의 빙하와 쓸쓸하게 얼음 조각에 매달려 울고 있는 북극곰의 처연한 모습을 떠올리며 환경 보호의 막중함과 인간의 잔혹성을 고찰하게 되는 것이다. 라는 것은 당연히 거짓말이고, 대체로는 이야기하기 민망할 정도로 무용하고 하잘것 없는 잡념들이다. 건너편에 앉은 사람의 셔츠에 적힌 영단어를 보면서 고민에 빠지거나(어째서 우리나라에는 패션(열정)이나 플레져(기쁨)라고 쓰여진 티셔츠를 입는 사람이 그렇게나 많은걸까), 시저 샐러드가 나오면 ‘시저는 시저 시저’ 같은 얼빠진 말장난도 속으로 해보는 것이다. 요컨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생각들이라고 할 수 있다. 구내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면서도 나는 생각에 빠져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하고, 나름 그럴싸한 결론에 다다르면 ‘오호, 그런거였구나'하면서 만족스럽게 끄덕끄덕 거리기도 한다. 옆에서 누군가 보고 있다면 분명 심각한 고민에 빠진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그래서 때때로 옆자리나 건너편에 앉은 사람이 말을 걸어오는 경우도 있다. ’저기, 왜 자꾸 밥을 먹다 말고 웃어요?'라거나 ’음미하느라 고개를 끄덕거리는 건가요?'라고 물어본다. 저번에 누군가는 설마 본인 때문에 웃는거냐고 진지한 표정으로 질문도 해왔다. 나도 사회적인 체면이 있으니까 거기에 대고 솔직하게 ’시저는 시저 시저, 가타부타 부타동’ 같은 대답을 할 수는 없다.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할게 좀 있어서요'라거나 ’웃긴 일이 떠올라서요'라고 얼버무리고 만다. 하긴 생각해보면 회사 영양사의 입장에서는 ‘저 사람은 왜 매번 점심을 먹으면서 고개를 가로젓는 걸까. 음식이 형편 없이 맛없다는 의미인 걸까?'하며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밥은 정말 형편 없는걸’ 하고 생각한 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인 테리 프랫쳇은 어딘가 인터뷰에서 ’상상의 이야기는 상상력을 가지지 못한 자를 화나게 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나는 감히 말하기를 그의 의견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의 상상에 화를 낸 이유는, 아마도 그가 상상한 것을 그대로 글로 옮기거나 말로 표현했기 때문이 아닐까. 밖으로 표현되지 않는 이상, 그것은 그 누구도 불쾌하게 만들지 않는다. 때때로 무책임하고 반도덕적인 판타지 속에서 우리는 뒤틀린 자유로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알기로 상상이 지닌 가장 즐겁고 유익한 덕목이란 바로 ’상상은 단지 상상으로 끝난다'라는 것이다. 예컨대 이런 경험들. 얼마 전, 토요일에 나는 혼자 브런치 카페에 갔다. 주말의 오후라 그런지 카페는 테라스까지 손님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그렇게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한숨을 돌리려는데, 무언가 의식의 언저리를 쿡쿡 찌르는 묘한 위화감이 드는 것이다. 지금 이 장소에는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나는 곰곰 생각한다. 그렇구나. 카페에는 서른명 남짓의 손님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전체 공간에 ‘남성‘이라고는 오직 나 혼자였던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화장실에 가면서 둘러보니 틀림없이 직원부터 손님까지 모두 여자였다. 혹시 여성 전용 카페 뭐 그런 것일까. 어떤 모종의 이유로 직원이 나를 여자로 착각하여 들여보내 줬는지도 모른다. ‘노 키즈 존’은 몰라도 ‘노 맨 존’이 존재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는데. 나는 초대받지 못한 모임에 끼어든 것처럼 깊은 당혹감을 느꼈다. 받아온 커피를 마시며 챙겨온 책을 봐도 좀체 글씨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상상에 빠지기 시작했다. ’지금 세상의 남자가 모두 죽고 나 혼자만 남겨진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이들 중에서 대체 누구와 만나줘야 하는거지?'’미안하지만 저 여자는 절대 내 취향이 아닌데' 무척 불결하고 무례한 상상인 것을 알지만, 어쩐지 한 번 시작하고 나니 재미있어서 멈출 수가 없었다. ‘만약 그렇다면 레즈비언의 비율은 과연 어느 정도려나’ 하는 추측도 덤으로 해가면서 나는 그 가설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나름 충실한 시간을 보냈다. 상상의 결말은... 역시 깊숙한 비밀로 남기는 것이 좋겠다. 그래도 상상 정도는 언제나 괜찮지 않을까...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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