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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말 Sep 11. 2023

일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고려 사항

일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고려 사항


     

  합정역 부근에서 마을 버스를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탁탁'하며 무언가 단단한 것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을 둘러보는데, 행인들도 나처럼 그 ’탁탁'하는 단속적인 소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듯했다. 그런데 별안간 버스 정류장 뒤편에 위치한 콘크리트 건물의 옥상에서 흰색 정원석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마른 하늘의 우박처럼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 광경에 잠시간 굳은 채로 멀거니 돌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 외국어를 해석하지 못하는 이방인이 된 기분이 되었다. 저 돌은 과연 무슨 의미인걸까. 맞아도 괜찮은 특수한 돌은 아닐까. 누군가 잠시 뒤에 사과를 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궁금증을 품게 된다. 그러다가 한 행인이 간발의 차로 돌을 피하며 내뱉은 ‘으악’ 하는 비명을 기점으로, 마치 달리기 시합의 신호탄처럼, 사람들은 질겁하여 ’꺄악'소리를 내지르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흩어진 사람들은 대로변의 가로수 밑이나 정류장 기둥 뒤에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이 뒤섞인 공기가 진하게 느껴졌다. 다들 마치 해변에서 몰려오는 파도의 적정선을 지키는 것처럼 돌이 부서져 발치까지 굴러오는 모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돌팔매는 끝난 걸까, 생각이 들 때마다 여지없이 돌은 날아왔고 그렇게 끊일 듯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그 건물 1층에는 카페가 있었으니 역시 이곳의 야외 테라스에도 돌이 무차별로 떨어지고 있었다. 탁자와 의자 그리고 인조 잔디와 낮은 담장에도 그 조약돌은 팅팅 소리를 내며 위협적으로 떨어졌다. 역시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약간의 의협심과 도전 의식이 생겨서 읽던 책을 머리에 이고 달려 들어갔다. 버스 도착 시간은 3분 뒤였다. 그렇게 공습을 피해 참호로 숨어드는 군인처럼 카페로 들어오니 손님들도 역시 아연한 표정으로 쏟아지는 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숨 고를 새도 없이 카운터로 가서 말을 걸었다. ‘사장님, 다름아니라 이 건물 옥상에서 자꾸 누가 돌을 던져서요. 건물 관리자나 경찰에 신고하셔야 할 것 같아요' 카페 사장은 나를 올려다보고 이어서 슬쩍 밖을 보더니 다시 나를 바라보며 무감동한 투로 대답했다. ’으음, 그래요? 그런데 이 건물은 저희와 별 관련이 없어서요. 4층으로 가시면 관리실이 있으니까 거기에 말씀하시면 될 것 같아요'이 카페 사장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아무래도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 나는 지금 아무래도 좋을 사소한 일에 대하여, 이를테면 화장실에 휴지가 떨어졌다거나 충전기를 빌리고 싶다거나, 문의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쨌거나 그것은 분명 내가 원하던 반응은 아니였다. ‘지금 제가 말하고 있는 곳이 다른 건물이 아니라 바로 이 건물이고, 카페 테라스의 손님 자리에도 돌이 떨어지고 있어요’ ’네. 으음, 그럼 어쩌죠?' 혹시 이 건물 옥상에서는 하늘에서 돌이 날아오는 일쯤은 일상으로 치부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이 사람도 상황을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욱하는 마음을 억눌렀다. ‘저기요, 제가 지금 사장님보고 나가서 돌을 막아 달라는 게 아니고, 저는 버스를 타야 해서 지금 가니까 건물 주인에게 먼저 연락을 취해보라는 말이에요. 경찰에게 연락을 하든. 뭐 해결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하시면 되고, 알아서 하시면 됩니다’ 결국 버스를 탔고, 기어이 건물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옥상에서 돌은 계속해서 날아오고 있었다. 대체 저 위에는 얼마나 많은 정원석이 있는 걸까. 시간만 여유로웠다면 직접 올라가서 확인해 봤을 텐데.     


  같은 날, 오뎅바에서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나오는데 ‘꺄아악!’ 하며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나와 친구는 비명이 들려온 골목으로 달려 들어갔다. 모퉁이를 돌자 검은 옷을 입은 젊은 여자가 볼을 움켜쥔 채로 다른 여자의 뒤에 숨어 있었다. 아무래도 다른 여자는 술집의 직원처럼 보였다. 그 맞은 편에는, 역시 술집의 직원으로 보이는, 덩치큰 남자가 한 눈에도 만취한 남자를 막아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만취한 남자 쪽에서 여자의 뺨을 때린 것 같았다. 일단 술집으로 그녀를 데리고 들어가 다같이 보호하면서 경찰에 신고를 했다. 모두가 경찰을 기다리며 피해 여성을 안심시키고 달래주려고 애썼지만, 겉보기에 그 검은 옷의 여자는 아무래도 주변의 흘러가는 정황들을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곧이어 순찰 중이던 경찰도 도착했으니 충분히 안전함을 느낄 법한 상황임에도 그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내내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어쩌면 예상치 못하게 뺨을 맞은 순간부터 이미 그녀는 정상적인 사고 기능을 잠시 멈춰 버린 것이 아닐까. 떠올려보면 골목에서 들려온 그녀의 새된 비명 소리에는 어딘가 신경 다발이 끊어지는 것처럼 으스스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었다. 아마도 중요한 것은 그녀가 ‘얼마나 강하게 맞았느냐’ 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녀는 뺨을 맞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뺨을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맞은 뒤에도 얼마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에게 ’뺨을 맞는다'라는 사건은 일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고려 사항에 기본적으로 포함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살면서 예기치 못한 폭력을 얼마든 만날 수 있다는 것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여기게 됐다.     


  어쨌든 나에게도 상당히 길고 묘한 하루였다. 낮에는 옥상에서 돌이 날아오는 일이 있었고, 밤에는 한 남자가 술에 취해서 여자의 뺨을 쳤다. 그리고 그 돌연한 폭력을 마주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혹스러워 했다. 걸음을 멈추고 그 상황을 우두머니 바라보게 된다. 우리들은 그런 느닷없는 폭력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별안간 옥상에서 날아온 돌을 맞거나 술자리에서 누군가 뺨을 친다거나, 여름의 해변가에서 벼락을 맞아 죽거나 어플로 만난 과외 학생이 나를 칼로 찌를 거라는 생각을 우리는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세상에 그런 일들은 역시 있다. 일상이란 천진하고 무사태평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 이면에 어둡고 불가해한 폭력성을 언제나 그 반쪽으로 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인생의 어딘가에서 아무런 이유나 설명도 듣지 못하고, 때로는 미처 깨닫지도 못한 채 그러한 압도적인 폭력에 무참히 휩쓸려버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삶에서 겪은 무참한 경험들이 모두 그런 것처럼, 그런 일에는 어떤 예상이나 분석도, 이해나 공감도 별로 소용이 없다.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살면서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난다. 그리고 일어난 일들은 결국 또다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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