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미한 소리 Jul 05. 2024

왕복 2차선 도로에서 내 앞의 차량이란?

 고속도로 운전보다 국도 운전을 더 좋아합니다. 풍경이 다채롭고, 더 재미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생각보다 시간 차이도 많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앞 차량이 너무 천천히 가면 길이 뻥 뚫려 있다고 해도 뒤 차량까지 천천히 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추월할 수도 있지만, 빗길이나 밤길이거나, 길이 너무 꼬불거리면 추월도 쉽지 않습니다.  


 며칠 전 제 경우가 그랬습니다. 모임이 있어서 서울에서 거제도로 혼자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5시간 넘게 운전해서 거제대교를 막 지났고, 앞으로 30분 정도만 더 가면 도착이었습니다. 아! 그런데 앞 차가 뻥 뚫린 도로에서 너무 천천히 갔습니다. 왕복 2차선 도로, 심지어 앞에서 말한 빗길과 밤길이었습니다. 추월하려고 앞 차에 바짝 붙어서 기회를 노렸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러다가 꼬불꼬불한 산 오르막길로 들어섰고, 추월이 거의 불가능해졌습니다. 앞 차에 짜증 났습니다. 최소한 몇십 분은 늦어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죠. 그렇게 짜증을 내며 산에 조금씩 올라갈수록 안개가 많아지기 시작했고, 언제부터는 바로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안개가 가득했습니다. 빗길, 밤길, 꼬불길, 안개길,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마다 다행인 점은 앞 차 후미등 불빛이 가야 할 길과 방향을 알려 주었다는 점입니다. 짜증을 유발하던 차량이 구세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구세주가 폭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르막이 끝나고 내리막이 되자 갑자기 속도를 올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점점 따라가기가 벅차지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안개가 짙어져 앞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조금 전만 해도 앞 차를 보면서 제발 좀 빨리 가라고 짜증을 내었는데, 이제는 제발 좀 천천히 가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앞 차는 빨리 가 달라는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던 것처럼, 천천히 가 달라는 바람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앞 차를 따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비상등을 켠 다음, 천천히 혼자 내려갔습니다. 


 다행히 목적지에 도착하고 안전해지자, 제 자신이 웃겼습니다. 같은 앞 차에 대해 짜증 냈다가, 고마워했다가, 빨리 가라고 화냈다가, 천천히 가달라고 애원했다가, 혼자서 이랬다가 저랬다가 했네요. 반대로 그 앞 차는 저를 어떻게 여겼을까요? 너무 뒤에 바짝 붙어서 긴장했을까요? 제게 짜증이 났을까요? 안갯속에서 저보다 빨리 달리면서 우쭐했을까요? 저를 따돌려서 통쾌했을까요? 빨리 달리지도 못하면서 까불었다고 무시했을까요? 그도 저처럼 생각과 마음이 수시로 변하지 않았을까요?


 같은 차와 운전자에 대한 제 생각과 감정이 순식간에 변했던 것처럼, 사람이든지 상황이든지 얼마든지 변하고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짜증 나는 상황이 얼마든지 고마운 상황으로 변할 수 있고, 내가 무시했던 사람이 얼마든지 나를 무시하는 위치에 설 수 있습니다. 좋았던 상황이 나빠질 수도 있고, 반대로 나빴던 상황이 좋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다른 이들을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높은 사람, 낮은 사람으로 함부로 판단하고 단정 지을까요? 상황과 현실을 고정적인 것으로 착각하면서 쉽게 좌절하거나 방심할까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과거 경험, 주변의 평가, 주어진 상황, 사회적 현실 따위로 자신을 틀과 한계에 가두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다음번에 어떤 모습과 상황으로 만나게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고,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모릅니다. 나 역시 더 커지고 대단해질 수도 있고, 더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나도 남도, 내 일상과 사회도 함부로 단정 짓지 말아야겠습니다. 얼마든지 변할 수 있음을 기억하고 유연하게 살아야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든 엄마가 국민엄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