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에르 카예하: 이곳에 예술은 없다
추석연휴 마지막 날 가족들과 함께 뭉크 전시를 보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갔습니다. 그날이 전시가 끝나기 바로 전날이고, 추석 연휴라서 관람객이 많을 것도 같았지만, 오히려 전시 마지막이니 이미 볼 사람은 다 봤겠고, 추석 연휴이니 미술관 말고 다른 장소로 놀러 가서 관람객이 적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이런! 제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루브르 박물관 같은 유명 박물관 앞 긴 대기 행렬이 한가람미술관에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장면이었습니다. 제 자신도 당황스러웠지만 먼저 간신히 설득해서 데리고 온 사춘기 두 녀석의 표정을 살폈습니다. 녀석들의 표정을 보니, 도저히 기다렸다가 전시를 관람하자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가족 긴급회의를 거쳐 뭉크 전시 대신 한가람미술관에서 하는 다른 전시를 보기로 했습니다. 2층에서 “하비에르 카예하: 이곳에 예술은 없다” 전시가 하고 있었습니다. 하비에르 카예하가 누구인지, 어떤 전시인지 사전 정보가 없었지만, 바로 입장 가능한 한산함에 감사하며 그 전시를 선택했습니다.
하비에르 카예하는 세계 미술 시장에서 경매가를 경신하며 스타덤에 오른 주목받는 스페인 현대 작가입니다. 전시에는 회화, 설치 작품, 조각, 드로잉, 콜라보 제품 등 다양한 작품들이 있었고, 작품마다 유머와 재치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뭉크 작품 대신 본다는 상황 때문인지 크게 마음이 움직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전시장에서 상영하는 하비에르 카예하 인터뷰 영상을 봤는데, 그 영상이 제 마음을 쿵 하고 때렸습니다. 하비에르 카예하의 작품은 세계적인 일본 작가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과 유사해서, 여러 오해와 편견을 받는다고 합니다. 하비에르 카예하 본인도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 자신이 하고 싶은 작업이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과 비슷해서 포기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독창성은 독특함과 유일무이함에 있지 않고, 오히려 자기다움에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작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다움을 잃지 않고 자기 작업을 해나간다면, 비록 그 작업의 결과물이 다른 작가의 작품과 비슷하다고 해도 독창성을 지닐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죠.
*하비에르 카예하 작품 (위)
* 나라 요시토모 작품 (위)
독창성이 독특함이 아니라 자기다움에 있고, 자기다움을 잃지 않는다면 다른 작품과 비슷해도 괜찮다는 하비에르 카예하의 인터뷰 영상이 제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는 평소에 삶의 기준을 타인이나 외부가 아니라 나 자신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생각 뒷면에는 남들과 다른 나만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소망과 강박이 몰래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로서 성경을 해석할 때에는 남들과 다른 독특한 해석을 하고 싶었고, 설교할 때에는 특별하고 유일무이한 설교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람과 마음일 뿐, 현실은 늘 평범한 제 자신과 결과물 뿐이었습니다. 추석 연휴에 뭉크 전시를 관람하는 일이 남들은 하지 않는 독특한 선택일 것이라는 바람과 달리, 수많은 인파가 모인 평범한 선택이었던 것처럼 말이죠. 저는 제 자신의 이러한 평범함이 늘 못마땅했습니다. 무언가 달라져야 한다는 조급함이 있었지만, 막상 무엇이 달라져야 할지 몰라서 답답했습니다. 이런 제게 하비에르 카예하는 달라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평범해도 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독특하고 유일무이하지 않아도 되고, 특별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남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야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남들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야 할 필요도 없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애쓰고 노력해도 평범한 제게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위로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남들과 같은 모습이길 바라십니까? 남들과 다른 모습이길 바라십니까? 독특하 길 바라십니까? 특별하길 바라십니까? 여러분 자신의 모습만 담겨 있다면 그 무엇이든 괜찮습니다. 나답게! 너답게! 우리답게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