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은 자신의 책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가상의 두 나라를 만듭니다. 두 나라 모두 부유한 소수가 대부분의 재산과 소득을 가지는 똑같이 불평등한 나라입니다. 다만 불평등을 만드는 요인이 다릅니다. 한 나라는 귀족 사회로 소득과 재산이 대물림됩니다. 따라서 신분이 불평등을 만듭니다. 다른 나라는 능력주의 사회로 신분이 아니라 각자의 능력에 따라서 소득과 재산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능력이 불평등의 요인인 것이죠. 저자는 이 두 나라를 소개한 후 질문합니다. 둘 중 어느 나라가 정의로울까요? 만약 부자라면 어느 나라에서 살고 싶나요? 가난하다면 어느 나라에 사는 것이 더 나을까요? 너무 쉬운 질문 아닙니까? 당연히 능력주의 사회가 더 정의롭고, 부자라면 자신의 재산을 자손에게 대물림할 수 있는 귀족 사회가 유리하고, 가난하면 자손들이 사회적 상승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능력주의 사회가 유리하겠죠.
그런데 정말 당연할까? 저자는 다시 질문합니다. 능력주의 사회가 귀족사회와 똑같이 불평등한데, 그 사회를 정의롭다고 할 수 있을까? 능력주의 사회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적 상승이 실제로 몇 퍼센트나 일어나고 있을까? 만약 사회적 상승이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으며, 귀족사회만큼은 아닐지라도 능력주의 사회에서도 상류층의 재산과 특권이 대물림된다면, 오히려 능력주의 사회에서 상류층으로 사는 것이 좋지 않을까? 왜냐하면 귀족사회의 상류층에게 자신의 특권은 그저 행운으로 자랑할 수 없는 일이지만, 능력주의 사회의 상류층에게 특권은 자신의 능력으로 쟁취한 자랑스러운 업적이 되니 말이죠. 반대로 귀족사회의 농노는 자신의 가난이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고 여기지 않겠지만, 능력주의 사회에서 가난한 자들은 자신의 어려움을 다 자신의 능력부족으로 여기고 살지 않을까? 그럴 경우 오히려 귀족사회에서 농노로 사는 것이 마음은 더 편하지 않을까? 능력주의 사회 속에서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더 무겁지 않을까?
여러분은 이 질문에 대해 어떤 답을 내리시겠습니까? 물론 마이클 샌델이 다시 귀족사회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능력주의 사회가 충분한가? 질문을 던질 뿐입니다. 능력주의 사회가 귀족 사회보다 나은 사회라고 할지라도 여전히 불평등한데, 충분한가? 능력주의 사회 속에서 예전보다 더 괴롭고 외롭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데, 충분한가?
능력주의에 대한 논의는 책에게 맡기고, 같은 질문을 제 자신에게 해봤습니다. 나는 충분한가? 목사로 설교를 했으니까, 칼럼을 썼으니까, 주보를 만들었으니까, 내 신앙은 충분한가? 교회가 녹색교회로 선정되었으니, 하나님 창조세계의 청지기로서 충분한가? 내 안에 괴롭고 외롭게 숨어 있는 마음은 없을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점점 더 악화되는 문제는 없을까? 나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은 없을까? 그들의 아픔을 인식도 못하고 괜찮다고 착각하며 지내는 것은 아닐까? 질문할수록 충분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물론 그 어떤 사회도 사람도 완벽할 수 없습니다. 약점과 허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다만 그 약점과 허점을 인정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충분하지 않음을 인정할 때,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충분하십니까? 약점과 허점을 인정하고 같이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가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