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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미한 소리 Nov 24. 2023

깨어 있는 숲 속의 공주

리베카 솔닛 "깨어 있는 숲 속의 공주 혹은 옛날 옛날 열한 옛날" 

 리베카 솔닛은 우리가 잘 아는 옛날이야기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재해석해서 “깨어 있는 숲 속의 공주”라는 새 이야기로 들려줍니다. ‘작가의 말’에서 한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잠자는 숲 속의 공주”에서 옛사람들의 아름다운 솜씨는 보존하면서 과거의 편견과 낡은 관점을 떨쳐 버리고 고쳐서 “깨어 있는 숲 속의 공주”를 쓴 것이죠. 리베카 솔닛은 무엇을 고쳤을까요? 


 먼저 잠자는 공주를 깨웠습니다. 기존 이야기에서 공주는 주인공이지만, 한 일이라곤 마녀의 마법에 의해서 백 년 동안 잠을 자는 일, 자는 동안에 왕자에게 키스받은 일, 그리고 곧장 왕자와 결혼한 일이 고작입니다. 이 일들에서 공주의 생각, 감정, 의견은 하나도 담겨 있지 않습니다. 말만 주인공이지, 어디에도 공주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제목처럼 공주는 잠만 잡니다. 그래서 리베카 솔닛은 공주를 깨우고, 목소리를 줍니다. 새 이야기의 공주 아이다는 마법에 걸려 잠들기 전에 노래합니다. 새와 토끼에 대해 노래하고, 인어와도 함께 노래하고, 무엇보다 겨우내 체리 잼을 먹는 백성들을 위해서 봄에 노래를 불러 체리 꽃을 피웁니다. 그리고 백 년 동안 자면서도 가만히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나이는 먹지 않았지만 머리카락은 계속 자라서 30미터나 되었는데, 나중에 이 머리카락을 사다리로 만들어서 탈출합니다. 뿐만 아니라 공주는 자면서 계속 꿈을 꿨는데, 깨어난 후에 이 꿈들을 노래로 만들어서 불렀습니다. 아이다는 잠만 잔 것도 아니고, 자신을 구해줄 왕자만을 기다린 것도 아닙니다. 아이다는 자면서 스스로 탈출할 수 있는 힘을 키우고, 꿈을 이루기 위한 준비를 했습니다. 물론 잠에서 깨자마자는 아이다도 당황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질문하고 고민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숨기지 않고, 결국 자신만의 길을 걸어갑니다.  


 잠에서 깨어나 자기 목소리로 노래하며 걸어가는 아이다를 보면서 저도 잠에서 깨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없어서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거나 아예 말도 하지 못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거든요. 힘이 없어서 남들에게 끌려 다니면서 그저 남들의 도움만을 기다리던 순간도 적지 않았습니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도 아니면서 백마 탄 왕자를 가만히 기다리고 적도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여러분의 이야기에는 여러분의 목소리가 있습니까? 아니면 온통 다른 이들의 목소리만 있고, 여러분은 잠만 자고 있습니까? 아이다의 노랫소리를 알람소리로 여기고, 잠에서 깨어 일어나야겠습니다. 


 그리고 깨어서 일어났다면, 리베카 솔닛이 고친 두 번째 관점이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힌트는 책의 부제 “옛날 옛날 열한 옛날"에 있습니다. 잠자는 공주 아이다의 이야기는 부모님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니까 옛날 옛날 세(3) 옛날이고, 여기에 대모 요정 일곱과 아이다의 동생 마야 공주를 더해서 옛날 옛날 열한(11) 옛날이 됩니다. 실제로 리베카 솔닛은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이야기뿐만 아니라, 언니가 자는 동안 깨어 있었던 동생 마야 공주 이야기를 새로 추가하고, 러시아 민담 “불새” 이야기, 당나라 화가 오도현 이야기, C.S. 루이스의 “마법사의 조카” 이야기처럼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조화롭게 엮어서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로 만듭니다. 이를 통해서 리베카 솔닛은 한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한 사람 역시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줍니다. 만약 제 이야기가 쓰인다면 저와 남동생, 부모님의 이야기로 시작하니 네(4) 옛날이고, 여기에 아내와 아내의 가족이 더해져서 팔(8) 옛날이 되고, 두 아이와 두 고양이도 만나니 열둘(12) 옛날이 됩니다. 


 "옛날 옛날 열둘 옛날에"라며 시작하는 저의 이야기가 리베카 솔닛의 이야기처럼 재미있고 아름답기를 바라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리베카 솔닛이 잠자는 숲 속의 공주에게 목소리와 힘을 준 것처럼, 저도 제 자자신에게 힘을 주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야겠지요. 그리고 리베카 솔닛이 여러 이야기를 조화롭게 엮은 것처럼, 제 목소리를 다른 열한 개의 소리와 화음을 이룰 수 있도록 음정과 음색을 조절해야겠지요. 그러다 보면 저의 열둘 옛날이야기도 제법 들어줄 만한 이야기가 되겠지요. 여러분의 이야기도 지금보다 더 아름답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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