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DNA 가진 아이, 갑질 교육부 사무관 정직 3개월”이라는 기사 제목을 클릭하면서 여러 가지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왕의 DNA가 따로 있나? 갑질? 자기 자녀가 왕의 DNA를 가졌다고 한 건가? 그러면 자신은 왕인가? 교육부 사무관이? 설마! 기사를 확인하니 설마가 아니라 진짜였습니다.
교육부 사무관 A 씨는 초등학생 자녀의 담임교사 B 씨를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하고 학교에 담임교사 교체를 요구했습니다. 이에 새 담임교사 C 씨가 부임했는데, A 씨는 C 교사에게 자신의 자녀에 대한 요구사항을 이메일로 보냅니다. 그 요구사항 중 하나가 ‘왕의 DNA’였습니다. “왕의 DNA를 가진 아이이기 때문에 왕자에게 말하듯이 듣기 좋게 돌려서 말해도 다 알아듣습니다. 지시하거나 명령하는 식으로 말하면 아이는 분노만 축적됩니다.”
아무리 자기 자식이 공주처럼 왕자처럼 귀해도 그렇지, 어떻게 선생님께 왕자에게 말하듯이 말하라고 요구할 수가 있습니까? 그것도 교육부 소속 공문원이 말이죠? 믿기 힘들어서 이메일 원문을 인터넷에서 검색했습니다. “제지하는 말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싫다는 음식을 억지로 먹지 않게 합니다. 또래의 갈등이 생겼을 때 철저히 편들어 주세요.” 왕의 DNA처럼 말도 안 되는 요구사항들이었습니다. 작년 8월 이 일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분노했고, A 씨에 대한 감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2023년 5월 23일 인사혁신처 중앙징계위원회가 사무관 A 씨에 대해 3개월 정직 처분을 통보하면서 기사가 난 것이죠.
기사 안에는 A 씨의 사과문도 있었습니다. “왕의 DNA라는 표현은 아동 치료기관 자료의 일부이고, 학교 적응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를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간 기관에서 준 자료를 전달한 것이 선생님께 상처가 됐을 것까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왕의 DNA와 말도 안 되는 요구사항이 아동 치료기관에서 준 자료라니,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또 검색했더니, 실제로 한 민간 연구소가 제공한 행동지침이 맞았습니다. 그 연구소는 자폐스펙트럼장애,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발달장애 아동을 약물 없이 자신들이 개발한 솔루션으로 치료가능하다고 홍보했는데, 그 솔루션의 일부가 왕의 DNA이고, A 씨가 보낸 행동지침이었습니다. 뭐 이런 연구소가 있나 싶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계는 이런 치료 혹은 양육방법이 의학적 근거가 없는 위험한 접근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당연하죠.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상한 점은 많은 사람들이 수백만 원의 등록비를 내고 이 연구소를 찾는다는 점입니다. 교육부 공무원이 이 행동지침을 신뢰해서 마치 병원 진료기록인 냥 자녀의 담임 선생님께 제공했다는 점입니다. 왜 그럴까요? A 씨가 사과문에서 말한 것처럼 자폐와 발달장애를 가진 아동들의 부모님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례한 갑질 부모에게 시원하게 욕하고 풀려고 했는데, A 씨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 때문에 마음이 혼란스럽고 무거워졌습니다. 물론 A 씨가 한 행동은 잘못되었죠. 그래서 징계도 받았습니다. 다만 왜 발달장애를 가진 부모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살아야 할까요? 왜 이상한 연구소를 찾아다녀야 할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가 발달장애를 가진 아동과 그 부모가 살아가기에 너무나 절박한 사회이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모든 사람의 DNA는 거의 비슷합니다. 여자와 남자도 비슷하고, 아시아인과 유럽인도 비슷합니다. 유럽인에게 왕의 DNA가 있으면, 아시아인에게 왕의 DNA가 있습니다. 남자가 왕이면, 여자도 왕입니다. 그리고 발달장애와 자폐 아동도 그렇습니다. 모든 이들처럼 당연히 왕처럼 귀한 이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먼저 그들을 우리와 다른 DNA를 가진 이들로 구분 지으며 밀어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래서 그들이 그렇게 절박한 심정으로 위험한 지푸라기를 의지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미안함을 담아서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은 왕의 DNA를 가진 사람입니다.”
참고 : 국민일보, 중앙일보 인터넷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