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방향을 바꾸는 힘
이별을 유독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애인과의 이별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와 같이 모든 유형의 인간관계를 끊어내는 것이 어려운 사람이 있다. 내가 바로 여기에 속한다. 유치원 시절부터 매일 붙어 다니며 친하게 지내던 단짝 친구가 있었는데, 친구가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가고 해외로 이민까지 가게 됐다. 이후에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지만 과거의 추억을 잊지 못한 나는 계속 연락을 취했다. 전화도 하고 편지도 보내고, 이메일을 보냈다. 성인이 되고 한국으로 돌아온 친구와는 3년에 한 번 꼴로 연락을 하며 친구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사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이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성인이 된 후에 만난 첫 연인과의 이별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닥 사랑했던 사이도 아니었는데 매일 밤을 울며 보냈고 물 한 모금, 밥 한 숟갈 먹지 못해 입술이 말라비틀어졌다. 이별을 이토록 두려워하는 내가 왜 다시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을까?
나는 비혼주의자였다. 결혼을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여자가 결혼으로 인해 짊어져야 할 책임과 대가가 상대적으로 크다고 생각했다. 인생을 나름 FM으로 살아온 내가, 결혼을 했을 때 도덕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뻔했다. 오로지 타인만을 위해 희생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 성향을 잘 알기 때문에, 결혼을 하게 되면 배우자 또는 아이를 위해 희생하며 살게 될 것이 뻔했다. 결혼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오로지 나의 행복을 위해서였다.
반면, 상대방은 나와 결혼하고 싶어 했다. 그가 꿈꾸는 미래에는 늘 내가 함께였다. 집은 어디로 할지, 차는 어떤 게 좋을지, 육아는 어떻게 해 나갈지. 물론 막연한 상상이었을 수도 있다. 애기들이 소꿉놀이하듯, 이것저것 어른들이 하는 그대로를 따라 하는 그런 말과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상대방에게 나는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얘기했지만 본인이 프러포즈를 하는데 넘어오지 않을 수 있겠냐며 떵떵거리는 모습이 귀여워서, 귀여운 애기를 보듯 웃으면서 그의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계속 나와의 미래를 얘기하는 그의 말을 듣다 보니 나까지 그 상상에 동참하고 있었다. 잠깐, 난 비혼주의자인데?
20살 이후 뚝심 있게 지켜온 인생 목표 중 하나는 바로 이민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외국을 나가는 것을 좋아해서 여행을 많이 다녀야지 하고만 생각했고 여행을 하다 보니 살아보고 싶어 졌고, 교환학생을 통해 미국에 살다 보니 그곳에 정착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고, 스펙을 쌓아서 외국계 기업에서 인턴을 시작으로 다른 외국계 기업 정규직 포지션으로 이직을 했다. 경력을 쌓으면 본사인 미국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있는 회사였고, 내가 이 회사를 선택한 건 오로지 그 이유였다.
여러 이유로 회사를 퇴사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당시, 나는 선택해야 했다. 꿈꾸던 미래를 위해 외국으로 나갈 기회를 찾는 게 맞는지, 혹은 한국에 남아 이 사람과 함께 내 인생을 꾸려갈지. 내가 외국에 나가고 싶어 하는 이유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근본적인 이유는 나의 행복을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이 사람 없이 내가 홀로 외국에 나가 생활하는 것이 과연 나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물론 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될 수도 있지만, 굳이 이 사람을 두고 외국에 나가서 고생하며 하루를 버티는 것이 보다 나은 선택일까? 나의 결론은 No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나는 내가 도무지 행복할 리 없었다. 그렇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새로운 커리어를 위해 도전을 시작했다. 바로 여기 한국에서.
나의 사랑은 삶의 방향을 바꿀 힘을 가질 만큼 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