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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Sep 10. 2021

스위스 여행을 겨울에 가야 하는 이유

3대가 덕을 쌓았다면,

스위스 여행을 검색하면 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사진과 글들은 대부분 초록빛으로 가득한 여름철의 모습일 것이다. 나 또한 처음 스위스 여행을 계획했을 때 참고한 것들은 전부 여름날의 스위스였다. 쨍한 햇빛과 푸르른 녹색으로 펼쳐져 있는 언덕, 그 멋진 광활한 자연을 가로질러 달리는 산악열차. 이 모든 것은 나와 친구를 스위스에 홀딱 빠져버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우리의 첫 유럽여행의 하이라이트, 체르마트로 향하는 날이었다.


스위스 체르마트에 있는 마테호른은 3대가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다. 그만큼 깨끗하고 맑은 마테호른을 보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고지대에 위치해있고 워낙 기상변화가 심하다 보니, 이런 말이 도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처음 체르마트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반겨주는 건 거센 눈보라뿐이었다. 온 세상은 푸른 녹색이 아닌 도화지처럼 새하얀 색으로 가득했고, 걸을 때마다 발이 푹푹 파여 운동화가 젖어들어갔다. 아무리 겨울이라 해도 이렇게 눈이 많이 올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역시 계획대로 되는 건 일절 없다.


체르마트에 3일을 머물렀는데, 첫째 날과 둘째 날은 숙소와 마을을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체르마트는 굉장히 작은 마을이라 끝에서 끝까지 30분이면 관광이 끝난다. 마테호른을 보기 위해서는 트레킹을 하거나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트레킹은 기상문제로 당연히 못 하고, 열차를 타고 올라가더라도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마테호른을 보러 왔는데, 그럼 이제 우리는 무얼 해야 하나.






어영부영 체르마트를 떠나는 날이 되었다. 이 날은 새벽부터 심상치 않았다. 전날까지 기상악화로 인해 마테호른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지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호텔방에서 마테호른과 첫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이른 새벽, 마테호른과의 첫 만남
동이 터 오르는 마테호른 모습



체르마트를 떠나는 날, 기적적으로 마테호른을 보러 갈 수 있었다. 열차를 타고 올라가는 내내 정말 기적이 일어난 듯한 느낌이었다. 하얀색으로 가득한 마을을 내려다보니 내 마음도 하얗게 물들어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드디어 마테호른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렘을 감출 수 없었다. 저 멀리 또 다른 설산도 보고 구름처럼 떠있는 눈안개도 볼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모든 풍경이 전부 아름다웠다.


어느새 전망대에 도착했고 가까이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마테호른이 선명하게 보였다. 눈으로 담아내기도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날이 너무 추워서 실내에 들어갔다가도 금세 마테호른이 그리워져서(?) 밖으로 나가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우리는 유럽여행의 목표를 꽤 이른 시간에 이룰 수 있었다.


어쩌면 마테호른을 제대로 본 순간보다 기다리는 동안 설레는 마음으로 열차에서 있었던 시간이 더 기억에 남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동안 다양한 마테호른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새하얗게 펼쳐진 체르마트를 보며 가족 생각이 났다. 멋진 풍경을 나 혼자 보는 것이 괜히 죄송스럽고 다음에는 꼭 가족과 함께 와서 스키도 타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리라 다짐했다.






스위스의 겨울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멋진 풍경을 보며 스키를 탈 수 있고, 추운 날 와인이나 커피를 마시면서 따뜻하게 몸을 녹이면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폭삭이는 눈을 밟으며 어린아이 때로 돌아간 듯 눈 장난을 치는 것도 재밌고, 우산을 쓰지 않은 채 내리는 눈을 맞는 것도 나름대로 즐겁다. 누군가에게 스위스 여행에 관해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자신 있게 겨울 여행을 추천할 것이다. 그렇다고 여름날의 스위스 여행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언젠간 푸르른 초록빛 자연으로 가득한 스위스를 보고 마리라.



눈 오는 날의 인터라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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