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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곡재 Jan 30. 2022

복숭아는왜 제삿상에 오르지 못할까?

귀신은 복숭아를 무서워한다

설날과 추석의 차례상, 기제사의 제사상에 오르는 과일은 주로 대추, 밤, 배, 사과 등으로 우리가 흔히 접하는 과일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복숭아는  늦여름부터 초가을까지 가장 사랑받는 과일임에도 제사상에서는 볼 수 없다. 또한 옛날부터 울타리 안에 감나무, 대추나무는 심어도 복숭아나무는 심지 않았다. 그 까닭이 자못 궁금해진다. 이유를 알려면 중국의 신화와 전설을 살펴보아야 한다. 

중국 전설의 삼황오제(三皇五帝) 중 요(堯) 임금 시절이었다. 어느 날, 해 열 개가 동시에 떠올랐다. 전설에 의하면 태양은 원래 동쪽 바다 탕곡(湯谷)이란 곳에 살고 있는데, 그곳의 바닷물은 늘 펄펄 끓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는 부상(扶桑)이라는 아주 커다란 나무가 있는데, 바로 천제(天帝)의 아들들인 10개의 태양이 사는 곳이다. 태양의 어머니 희화(羲和)는 매일 용이 끄는 수레에 아들 중 하나를 태운 후 인간 세상에 데려다주었다. 세상이 시작된 후 이렇게 열 개의 태양이 매일 정해진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떠올랐는데, 늘 정해진 규칙에 따르는 것이 지겨웠는지 열 개의 태양이 모여 동시에 나가기로 모의하였다. 이리하여 세상에 열 개의 태양이 한꺼번에 떠오르자 극심한 열기와 가뭄으로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죽어가게 생겼다. 인간 세상의 극심한 고통을 알게 된 천제는 활쏘기 천재인 후예(后羿)-이하 예-를 내려 보내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였다. 

                                             <활로 9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리다>


예는 아내 항아(姮娥)와 함께 인간 세상에 내려와 활로 태양 9개를 쏘아 떨어뜨렸다. 예의 화살에 맞는 태양은 땅에 떨어져 세 발의 황금빛 까마귀(三足烏)로 변했다. 이렇게 뜨거운 열기로부터 세상을 구한 예는 오래 전부터 사람들을 괴롭혀 온 괴물인 알유(窫窳), 착치(鑿齒), 구영(九嬰), 파사(巴蛇), 봉희(封豨), 대풍(大風)을 물리침으로써 다시 한 번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


지상에서 할 일을 마친 예와 항아가 다시 하늘로 올라가고자 하였으나 천제는 허락하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의 아들인 태양을 아홉 개나 쏘아 떨어뜨렸기 때문이 아닐까? 원래 살던 하늘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인간 세상에서 늙어가게 된 항아는 우울증에 걸렸는지 남편 예에게 수시로 바가지를 박박 긁었나 보다. 이에 속이 상한 예는 마음을 달랠 겸 강가를 거닐다가 물의 신 하백(河伯)의 부인 복비(宓妃)와 사랑에 빠졌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 고전판인 셈이다. 하지만 둘의 로맨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막을 내렸고, 바람피우다 걸린 예는 아내인 항아에게도 외면 받았다. 더구나 하늘에서 살 때야 수명이 정해져 있지 않았지만 인간 세상에서 살게 된 예와 항아는 정해진 수명만을 살아야 했기에 다시 하늘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마침 서쪽 곤륜산에 서왕모(西王母)가 불사약을 갖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예는 갖은 고생을 겪은 끝에 불사약을 얻어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남편을 미워하게 된 항아는 예가 외출한 틈을 타 몰래 불사약을 다 먹어버린 후 혼자 달로 떠나버렸다. 

                                                         <항아 혼자 달로 떠나다>


이제 예는 아내도 잃고 하늘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자신의 특기를 살려, 활쏘기를 배우겠다고 찾아온 젊은이들을 제자로 맞아 열심히 가르치기로 하였다. 제자 중에 실력이 가장 출중한 방몽(逢蒙)이란 청년이 있었는데, 예의 가르침과 본인의 노력으로 명사수가 되었다. 그러나 방몽은 아무리 연습해도 도저히 스승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걸 깨닫자 스승인 예를 죽이기로 결심하였다. 어느 날 방몽이 숲속에 매복하고 있다가 예가 지나갈 때 화살을 날렸다. 하지만 활 소리를 들은 예도 화살을 날렸다. 양쪽에서 날아온 화살이 사람 인(人) 자로 부딪혀 떨어지기를 반복하다 마침내 예의 화살이 바닥났다. 방몽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예를 향에 마지막 한 발을 날렸고, 예는 쓰러졌다. 방몽이 확인하러 다가가자 예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예는 날아오는 화살을 이로 물었던 것이다. 방몽은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고 대범한 예는 용서하였다. 하지만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방몽은 예가 날아가는 기러기를 향해 활을 당길 때 복숭아나무로 만든 몽둥이로 자신의 스승인 예의 뒷머리를 가격하였고, 불의의 습격을 받은 예는 눈을 감았다. 이렇게 예는 어이없게 생을 마감하였지만 사람들은 예의 공헌을 기억하고 신으로 추앙하였다. 예는 죽어서 나쁜 귀신을 물리치는, 귀신의 왕이 되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한 불사약이 복숭아라고 한다. 손오공이 서왕모(西王母)의 복숭아를 훔쳐 먹고 쫓겨났다고도 하고, 동방삭이 훔쳐 먹고 삼천갑자(三千甲子)를 살았다고도 한다. 그러나 예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얻어온 불사약인 복숭아를 항아가 혼자 먹은 후 도망갔고, 더구나 제자에게 복숭아나무로 만든 몽둥이에 맞아 죽었으니 ‘복숭아’라는 말만 들어도 기절할 정도의 ‘트라우마’가 생겼을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모든 귀신의 왕인 예도 무서워하는 복숭아를 조상을 모시는 제사상에 올릴 수는 없게 되었다고 한다.


* 예와 항아에 관한 전설은 여러 가지 버전이 있으나 여기에서는 중국 위앤커(袁珂)의 《中國神話傳說》의 해당 부분의 내용을 정리하였다.

** 방몽(逢蒙)의 ‘逢’은 대부분 ‘봉’으로 읽지만 ‘성씨’일 경우는 ‘방’으로 읽는다. 중국어 발음도 féng(만나다)과 Páng(성씨) 두 가지로 읽는다.

* 동방삭(東方朔, BC154~BC93), 중국 한(漢)나라 때 실존인물로 원래 성씨는 장(張)이고 한 무제 때 자천으로 관리가 되었다. 지혜롭고 재치가 있었으며 말과 글의 솜씨 탁월했다고 한다. 당시 유행했던 도교의 영향으로 신선으로 추앙되었으며, 전설에 의하면 삼천갑자(3,000X60년) 동방삭이라고 하는데, 서왕모의 복숭아(불사약)를 훔쳐 먹고 18만년을 살다가 우리나라 탄천(炭川)에서 저승차사에게 잡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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