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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서안 Dec 26. 2023

어떤 노래는 그리운 옛날로 돌아가게 하고

음악과 향기에 담긴 기억












학교에 눈이 내렸다. 법학관에 있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밖을 내다봤는데, 친구가 자기는 눈이 오면 EXO의 첫눈을 듣는다는 말을 했던 게 떠올랐다. 몇 년 만에 그 노래를 들었더니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부산 어느 학교의 낡은 복도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텅 비어 있는 교실, 따뜻한 햇살, 나지막이 울려 퍼지는 걸음소리. 어린 시절의 나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질문하면 손들기 좋아하던 애였다. 반장도 몇번 했지만 아주 활동적인 성격은 아니었다. 그리고 도서관을 무척 좋아했다. 책장 사이에 주저앉아서 <해리포터>, <타라 덩컨>, <얼음과 불의 노래>, <드래곤 라자>, <어스시> 시리즈를 흥미진진하게 읽던 기억이 있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소설 속 주인공처럼 멋진 사람이 되어 가슴 뛰는 모험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Taylor Swift의 <Lover> 앨범을 들으면 재수를 하던 그 해 여름이 생각난다. 그때 당시에도 <Lover>는 발매된 지 시간이 지난 앨범이었는데 왜 갑자기 거기에 꽂혔던 걸까? 해도 다 진 늦은 밤, 재수종합반 수업을 듣고 야간 자율학습까지 하고서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그렇게 이 앨범을 돌려 들었더랬다. 지금이야 그 시절의 에피소드도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땐 나름 걱정도 고민도 많았고 불안했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대학에 합격해서 즐겁게 새내기 생활을 하고 있는데 나는 학원에 처박혀서 공부를 다시 하고 있었으니까... 막상 와보니 별것도 아닌데 그땐 왜 그렇게 대학이라는 두 글자가 커 보였을까? 지난한 수험기간을 무던히 잘 견뎌냈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속에 쌓인 게 많았나 보다. 모니터에 뜬 '합격'을 봤을 때 나도 모르게 주저앉아서 엉엉 울었던 걸 보면. 예비번호를 받아서 추가합격을 기다려야 했다면 그것도 은근 마음고생이었을 텐데, 좋은 소식을 일찍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노래뿐일까? 기억의 촉매제로 작용하는 것에는 향기도 있다. 차가운 겨울 냄새. 서늘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뺨을 간질이고 지나갈 때 코끝에 맴도는 향기. 내가 좋아하는 거다. 시험기간에 새벽같이 일어나 도서관을 가기 위해 언덕을 오를 때, 친구와 함께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밤거리를 거닐 때,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한 광화문을 돌아다닐 때. 그 향기를 맡으면 기억 한구석에 덮여있던 장면들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또 무더운 여름에 더 잘 느껴지는 풀잎의 향기도 그렇다. 녹음이 우거진 캠퍼스 풍경,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손에 들고 배회하는 학생들, 자전거 타고 강변을 따라 달리던 기억과 숨이 차던 순간들이 그 안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이런 걸 보면 아무래도 나는 현재보다 과거에 머무르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다. 그것도 썩 나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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