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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서안 Mar 17. 2023

바다

번아웃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흐린 하늘 위로 새 한 마리가 지나갔다. 수평선 쪽에는 해가, 숙소 위에는 달이 떠 있었다. 무슨 현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진으로 담아두고 싶은 풍경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부산에서 자란 나에게 바다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지하철로 쉽게 갈 수 있어서 자주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즉흥적으로 간 적도 있고, 마음이 복잡하고 고민이 많을 때 훌쩍 떠나서 벤치에 앉아 오래도록 바다를 보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을 타지로 오면서 바다를 쉽게 볼 수 없게 된 지도 벌써 1년이 되었다.


2학기가 끝난 뒤, 도망치듯 찾아온 바다는 생각보다 더 고요했다. 이 넓은 곳에 사람이라고는 둘 뿐이었다. 그마저도 다른 하나는 차를 대고 캠핑을 하고 있는지, 저 멀리서 불에 무엇을 굽고 있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관광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숙소 바로 앞이 바다라는 점이 좋았다. 이곳에서 나는 수시로 바다를 찾았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바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어폰을 빼고, 온전히 바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가만히 차가운 바람을 맞고 서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졌다.


언제 한 번은 노을이 질 때 바닷가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서해안이라 그런지, 물이 다 빠져나가 뻘이 되어 있었다. 바닥이 훤히 드러난 모습이 꼭 내 마음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법 쓸쓸했다. 그 모든 일을 한꺼번에 감당하느라 얼마나 힘을 들였던가. 그것도 가족 하나 없는 타지였으니 학기가 끝날 때 즈음에는 완전히 지쳐버릴 만도 했다.


그날 밤이었다. 저녁을 먹고 편의점에 다녀오는 길에 문득 생각이 나 또 바닷가에 갔다. 역시나 아까 전과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었다. 물이 다 빠져 초라해진, 볼품없는 바다. 해안으로 내려가 플래시를 끄 주위에는 온통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시각이라는 감각이 차단되 낮에는 들리지 않던 게 들렸다. 아주 작은 풀벌레 소리 같은 것들이.


얼마를 그렇게 있었을까, 날이 추워 숙소로 돌아가려고 하던 찰나 파도 소리가 들렸다. 다시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바닥이 훤히 드러난 에도 언젠가는 다시 물은 차오르는구나. 맞아. 영원한 고갈은 없. 단지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썰물이 밀물로 바뀌는 그 반나절, 딱 그만큼의 시간이 내게도 필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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