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기사, 판결문, 심지어 논문에 이르기까지 모든 글은 메모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당연한 사실을 잊는다. 글을 쓸 때마다 ‘잘 써야 한다’는 강박, 뭔가 특별해 보여야 한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글을 복잡하게 만든다. 하지만 글쓰기는 원래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메모처럼 시작되어야 한다. 핵심을 빠르게 포착하고, 꼭 필요한 말만 남기는 것.
이런 관점에서 ‘글은 예술’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맞다, 글쓰기는 예술이다. 언어를 통해 삶을 표현하고, 감정을 기록하며, 사회를 비추는 작업이니까. 하지만 예술이라고 해서 반드시 어려워야 할 이유는 없다. 위대한 예술일수록 더 단순하고 명료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제인 오스틴이다. 그는 글을 통해 여성의 위치와 자율성, 사회의 위선을 날카롭게 지적했지만, 결코 어렵게 쓰지 않았다. 그의 문장은 언제나 평이했다. 그런데도 시대를 넘어 오늘날까지 읽히고 있다.
그녀의 소설 《설득(Persuasion)》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I hate to hear you talk about all women as if they were fine ladies instead of rational creatures. None of us want to be in calm waters all our lives.”
“여성을 고상한 숙녀로만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 중 누구도 늘 평온한 삶만 원하지 않는다.”
이 문장을 보라.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거부하고, 여성을 ‘이성적인 존재(rational creatures)’로 존중해야 한다는 오스틴의 입장이 드러난다. 이런 문장이야말로 좋은 글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독자를 지치게 하지 않으면서도, 정확하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말한다. 흔히 “글재주가 좋다”라는 칭찬은 다시 말해 주관이 뚜렷하고, 그것을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하는 능력이 좋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글은 메모처럼 시작된다. 처음에는 핵심만 간결하게, 정돈되지 않은 상태로 적는다. 중요한 건 그 메모가 내 사고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서 상대를 위한 글로 다듬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전문적인 주제는 복잡하게 쓸 수밖에 없다", "그 분야는 원래 독자 수준이 높으니 괜찮다"라는 말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그런 말은 대부분 본인이 그 주제를 잘 이해하지 못했거나, 쉽게 설명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변명에 가깝다.
제인 오스틴은 그렇게 쓰지 않았다. 그는 사회에 대해 말했고, 여성에 대해 말했고, 인간의 허영과 자존심, 사랑과 후회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것을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언어로 썼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도 수백만의 독자에게 읽히고 사랑받는다. 오스틴처럼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