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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人)

시간을 새기고 공간을 세우다

by 신서안

아기는 태어나면서부터 실을 쥐고 있다. 부모의 손길 속에서 첫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인연의 씨실이 엮이기 시작한다. 아이는 성장하며 수많은 사람과 부딪히고, 웃고, 울며 저마다의 인생이라는 직물을 짠다. 사랑하는 이와 눈을 맞추는 순간은 붉은 실로, 고통과 절망의 시간은 검은 실로, 기쁨과 희망은 황금빛 실로 더해진다. 그렇게 한 땀 한 땀, 서사를 엮어간다.

그러나 직물이 언제나 고르게 짜이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엉킨 실을 풀어야 하고, 원치 않는 실이 끼어들기도 한다. 예상치 못한 이별이 찾아오면 실이 끊기고, 믿었던 관계가 허물어지면 천이 찢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실을 잇는다. 눈물로 젖은 손끝으로라도 다시 한 줄을 엮으며 나아간다.

어떤 사람은 화려한 무늬를 짜고, 어떤 사람은 거칠고 투박한 천을 만든다. 누군가는 미처 다 짜지 못한 채 떠나고, 누군가는 오래도록 실을 이어간다. 그러나 그 끝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어떤 이가 남긴 실은 또 다른 이의 천으로 이어지므로. 부모가 자식에게, 스승이 제자에게, 친구가 친구에게. 서라벌의 황금 지붕부터 도시의 유리 마천루에 이르기까지, 선비의 필묵부터 파란색 단문 메시지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 인류의 이야기는 그렇게 형체를 달리 하며 흐르고 또 흘러왔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손에서 실을 놓게 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짜온 이야기의 천은 누군가의 삶 속에서 다시 엮일 것이고, 그 흔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인간은, 살아가는 한 끊임없이 이야기를 엮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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