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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로를 살리는 방식

바로 너에게 쓰는 편지

by 신서안
사랑하는 친구에게.



사람을 믿는 일이 점점 더 조심스러워지는 시대다. 선의조차 오해받기 쉬운 세상 속에서, 나 역시 어느 순간 마음을 닫고 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되돌아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대가 없는 선의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사람 사이의 따뜻함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 믿음의 증거는 늘 뜻밖의 순간, 예상치 못한 사람들에게서 찾아왔기 때문이다.



캠프에서 단 한 번 마주쳤을 뿐인 사람이 보여준 다정한 배려. 같은 학과라는 이유만으로 바쁜 시간을 쪼개 내게 건넨 진심 어린 조언. 언어도 제대로 통하지 않으면서, 단지 고향을 떠나 낯선 도시에서 홀로 살고 있다는 공통점만으로 서로 끌어안고, 돕고, 함께 헤쳐 나갔던 문제들. 그 모든 순간이 나로 하여금 세상을 다시 믿게 만들었다. 그저 작은 눈짓 하나로도 서로를 지탱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 순간들 속에서 나는 인간이 얼마나 서로를 살리는 존재인지를 절감했다.



이처럼 살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시기에, 뜻밖의 사람에게서 따뜻한 손길을 받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보상을 바라지 않는 말 한마디이기도 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등을 밀어주는 작은 배려이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라는 질문보다, ‘어떻게 나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어떤 인류학자가 말했다. “절대 소수의 헌신적인 시민들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의심하지 마라. 사실 그것만이 세상을 바꿔온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의 말이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우리가 세상을 바꾸는 거창한 존재는 아닐지라도, 누군가의 하루를 바꾸는 따뜻한 존재는 될 수 있다는 믿음. 말 한마디, 미소 하나, 묵묵히 곁에 있어주는 마음. 그것들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나 역시 내가 받은 온기를 기억하며, 다른 누군가에게 같은 온기를 나누려 애써왔다. 때로는 그 손길이 반응 없이 스쳐 지나간 적도 있었다. 어렸을 때는 그럴 때마다 허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이제는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건넨 선의가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다. 네가 나를 영영 잊어버려도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누군가를 보듬고자 애쓸 것이다.



그리고 네가 그 ‘누군가’라는 사실이 내게는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른다. 사랑하는 내 친구야. 너는 내가 이 믿음을 놓지 않게 만들어준 사람이다. 네가 부르면 나는 밤이고 낮이고 언제든 달려갈 것이다. 나에게 단 한 푼이라도 있다면 아낌없이 내어줄 것이다. 너의 긴긴밤을 함께 걸어주고, 너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것이다. 그러니 꼭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다만 네가 살기를 바란다.



살아서, 너만의 빛으로 앞날을 밝혀가기를 바란다.



살아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따뜻함을 건넬 수 있기를 바란다.



나에게 올 몫의 모든 행운이, 올해는 네게 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앞으로도 나는 이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 대가 없는 선의가 결국 세상을 잇는 끈이라는 것을,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본질이라는 것을, 나 자신의 삶을 통해 증명하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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