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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WATNEUNGA Jun 22. 2023

나의 아버지

#책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시아 #사무치게 그리움

아버지에 대한 책은 다 비슷하겠지?

가족을 위해 자식을 위해 희생하신 아버지를 회상하며 돌아가신 후에야 후회하고 그리워하는 그런 뻔한 이야기겠지!


아니었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광팬으로서 비슷한 제목이라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이 책에 대한 내 선입견은 읽기 시작한 직후부터 와장창 부서졌다.


이 책의 ‘해방’은 내가 생각한 일상에서의 정신적 해방이 아닌 사전적 역사적 의미의 진짜 ‘해방’이었다!


빨치산 출신의 부모를 둔 딸이 아버지의 장례식을 정점으로 ‘인민 해방’을 평생의 과업으로 살아왔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과 애환과 애틋함과 그리움을 담담하게 이야기한 ‘찐 아버지의 해방일지’다.


특히 내겐 이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전라도 사투리가 정겹다. 꼭 외계 행성에서 같은 별 출신을 만난 것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들어온 모국어 같은 느낌이랄까. 전라도 사투리로 쓰인 대화글을 읽을 때마다 지금은 안 계신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께서 바로 눈앞에서 내게 얘기하고 계신 듯한 착각이 든다. 낯선 주제와 용어에 비해 친근하고 유머러스한 빨치산 출신 아버지, 어머니, 다른 어른들의 말투와 대화내용에 ‘큭’하고 웃다가도 어느새 나의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생각나 코 끝이 찡해 훌쩍거리고 책을 읽는 내내 아주 난리도 아니다.


요즘과 달리 전통적인 한국 사회에서 ‘아버지’는 가부장제의 가장 큰 수혜자이자 피해자였다. 엄마와 자식들은 가정 내 서열 1위인 아버지만 빼고 같은 편인양 친한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아버지는 늘 외로웠다. 옛날 옛적부터 한국에서 남자란 남편이란 아버지란 자고로 강해야 하고 능력이 있어야 하고 울어서도 안되고 힘든 내색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이미지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아버지 살아생전엔 어렵고 어색하고 껄끄러운 사이였다가 돌아가신 후에야 평소에 살갑게 대하지 못하고 사랑표현 낯간지럽게 못한 것이 두고두고 가슴에 맺혔으리라.


하지만 난 4남매 중 막내딸이다. 아버지 사랑 듬뿍 받고 거리낌 없이 아버지가 팔순이 넘을 때까지 안고 뽀뽀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좀 더 곁에 있어드리지 못한 것이, 옛날 한창때 어떻게 살아왔는지 몇 번이나 들었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사람 고픈 얘기들을 지루해했던 것이, 소년으로서 청년으로서 남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아버지를 이해해주지 못하고 그저 나의 아버지로만 여겼던 어쩌면 당연했던 것조차 책을 읽는 내내 명치 언저리까지 울컥울컥 올라온다.


전라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쓰시던 아버지, 어머니가 가슴 아리게 보고 싶은 이 밤, 응급처치로나마 오래된 앨범을 꺼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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