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 무뎌진다는 말은 약간의 배려다.
[믿고 싶지 않을 만큼 그렇게 빠르게 흐른다.]
아빠 이야기를 가족과 남편, 상담 선생님과 한다. 친구, 지인에게는 아빠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는다. 아빠가 하늘 소풍을 가신 후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고, 많은 눈빛을 보았다. 아직도 생각나는 침범에 가까웠던 동정의 눈빛 그리고 가끔은 나보다 더 당황해하고 어쩔 줄 몰라하고 때로는 더 두려워하는 상대방을 위로해야만 했다. 그런 상황이 되려 불편했고 점점 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혼자 무겁게 들고 있었던 이 마음을 편히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은 지금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는 없었다.
그렇게 9년이 지나 서른이 되니 친구들도 부모님이 떠나가면 어떨까 가끔 생각해보게 된다며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나 또한 그 질문에 많은 감정들이 겹치고 많은 말을 꺼내고 싶어도 굳이 당장 느끼지 않아도 될 감정이기에 생각만으로는 상상이 안되고 감히 어려운 이 마음을 어떤 단어와 문장으로 쉽게 말할 수 없어서 시간이 지나 많이 괜찮아졌다고, 무뎌지기는 하더라 그리고 지금 당장 깊이 고민하지 말고 전화나 한번 더 해 드려라고 답해버릴 때가 많다. 그렇게 그 순간 상대방과 나에게 하는 약간의 배려를 하고 뒤돌아 혼자 다시 울곤 했다.
그래 언젠간 나도 이 현실을 떠나 하늘 소풍을 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당장 남겨진 사람은 희미해지는 뚜렷한 기억을 그리고 추억하며 다시 이내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 뜨거운 마음이 누군가에겐 막연한 두려움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그 질문에 최선의 배려를 더한다. 그리고 이기적일 수 있으나 그 모습을 보고 불편해질 나를 위한 배려. 그렇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한 말이기에 겨울이 다가오면 제일 많이 하게 된다.
‘만약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래서 다시 아빠를 생각보다 조금 빨리 떠나보내야만 한다면 다양한 말과 시선들에 상처 입지 않고 내가 되려 위로하지 않고 애써 괜찮은 척하지 말고 건강하고 바른 애도를 하기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