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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Nov 24. 2021

시간이라는 긴 터널을 걸었다

이별은 가족도 포함된다는 말이었다

아빠가 떠난 후 '내가 행복해도 될까?'에 대해 고심한 적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엄마의 뒷모습이 한없이 허탈해 보여서 감히 내가 행복이라는 것에 희망을 걸어 놓아도 행복이라는 것에 당첨될 확률은 로또만큼 어려운 순간이었다.


가족 모두 갑작스러운 부재에 목 놓아 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있어야 할 존재의 부재. 마음 준비도 없이 보냈던 우리는 그저 시간이라는 긴 터널을 걸었다.  


그래서 아빠 물품을 정리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리고 그 당시에도 쉽게 물품을 태울 수 없어서 결국 아빠의 물품들이 아직 고향집에 남았다. (사실 그 덕분에 아빠의 물품들을 들여다보곤 한다.)


 당시  나이 스물하나, 대학교 2학년. 그때 크리스마스는 그저 슬펐다. 추위를 많이 타던 내게 겨울은 마음 마저 황폐해진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나보다 엄마를 챙겨야 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당연한 듯 마음이 그렇게 했다.


그러다 보니 20대에 할 수 있던 것들은 꿈도 꾸지 못했다. 사실, 그럴 기분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타지에 있는 자취방을 정리하고 포항에서 경산까지, 경산에서 포항까지 통학 버스를 타고 대학 생활을 보냈다.


사실 그때 하염없이 달리는 통학 버스가 아니었다면 나는 어디론가 훌쩍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이별이란,

가족도 포함이 된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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