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acemaker Oct 04. 2021

꿈이 나를 끌어 이곳에 데려왔다.

문화라는 바다 위에서 표류하기.

문화사역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문화를 통해 하나님을 전하고 싶었다. 이십 대에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가장 하고 싶게 된 일이다.


  생각해보면, 문화만큼이나 다양한 것을 포괄하고 있는 광범위한 단어가 없다. 삶의 양식으로서의 문화를 말했던 것이 아니다. 예술로서의 문화를 통해 일하길 원했다. 문학이나 음악 또는 연극 등을 통해 그분을 전하고 싶었다.


   결혼과 동시에 타문화권으로 나온 후에, 비전을 생각할 겨를이 없이 길을 잃었다. 내가 속한 곳, 국제기구인 IRRI에는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여 있고, 전 세계의 문화와 종교가 공존하는 곳이다. 모두가 평등하게 자기 신을 부르는 이곳에서, 왜 나는 크리스천인지 왜 하나님이 유일신이신지 설득할 수가 없었다. 삶으로도 전도하기 버거운 죄인이었을 뿐이다.


   다국적의 배경을 가진 크리스천들과 성경공부 모임을 이어갔다. 수많은 나라에서 온, 익숙하지 않은 다양한 교파의 크리스천들이 있었다. 무신론자도 우리 모임에 나왔다. 그곳에서 한국 기독교 문화의 색깔을 잃게 되었다. 모든 문화의 크리스천이 가진 공통의 것, 복음 외에 것은 사라져 버렸다. 


   문화사역자라는 말이 이제는 다르게 인지된다.  수많은 나라의 문화를 접했고, 그들을 이웃 삼아 살았다. 여러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이 경험들을 가지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그동안 망망대해에 떠 있었다. 사방이 물인 곳에서 정작 마실 물은 없었다. 혹은 타 죽을 것 같은 사막에 서 있었다. 스스로 우물을 파지 않으면 말라죽을 수밖에 없는 곳에서 우물을 찾고 있었다.


  나는 마실 물을 찾았을까. 이 목마름을 해갈하고 싶다. 돌고 돌아 글을 쓰게 되었지만, 글을 통해 그 여정들을 되짚어보기 원한다. 실패의 쓰디쓴 마음과, 보석 같은 경험들을 모두 안고서, 그동안 파고 있던 우물 곁에 앉아 곧 쏟아져 나올 폭포수 같은 물을 기대한다.


 그간의 고민과 고통을 모두 씻어줄 생명수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밥상에서 시중드는 사역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