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성경공부 모임의 리더로
재성은 어렸을 때부터 저녁 식탁에서 아버지가 대표기도를 시킬 때면 저 멀리 아프리카 사람도 밥을 먹여 달라고 기도했다. 그래서 이런 비전을 택했을 거고, 내가 저들을 위해 지금 밥을 하고 있는 거야,라고 주희는 되뇌었다.
제이슨과 사라가 미국으로 떠난 뒤, 모임은 위기에 봉착했다. "너희들이 떠나면 이 성경공부 모임은 어떻게 될까."라는 물음에 그들은, "그러게, 나도 그것이 제일 궁금하다."라고 답했다. 이제 누가 교재를 준비하고, 누가 호스트를 할 것이며, 사람을 모을 것인가.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총대를 짊어진 사람은 바로 주희였다. 그녀는 리더라기보다는 서번트에 가까운 사람이다. 사실 그들의 모임엔 절대적인 리더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제이슨이 자그마치 15년 동안이나 이끌었지만, 그는 여느 교회의 리더와는 사뭇 달랐다. 그는 모임을 이끄는 리더는 아니었다. 오히려 많이 듣는 리스너에 가까웠다.
성경공부의 주제도 회의를 통해 결정했다. 교재를 정해 토론할 때 각 주제에 공통적으로 달리는 답은 없었다. 워낙 다양한 나라에서 온 크리스천들, 거기다 원한다면 무슬림이나 불신자, 무신론자에게도 열린 모임이었으니 한 주제에 대해 생각하는 답은 모두 달랐다.
주희는 자신이 없었다. 그녀만이 학사 졸업생, 모두가 대학 박사 이상을 나온 지적인 그룹에서 그녀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한 것은 바로 밥을 짓는 일이었다. 돌아가며 서로의 집에서 성경공부 모임을 갖던 것이, 거의 주희네 집에서 매주 금요일 밤마다 모이는 것으로 바뀌었다.
주희에게 이름나고 훌륭한 박사님들은(남편인 재성을 포함하여) 오히려 측은한 대상들이었다. 오랫동안 공부만 해온 탓에 그 외 모든 것에는 소질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IRRI의 박사님들은 잘 먹지 못했다. 필리핀은 먹거리가 가난한 나라다. 신선한 채소를 먹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저녁 메뉴를 비빔밥으로 정했다.
성경공부하는 날이 가까워지면 시장에 가서 제철의 싱싱한 채소들을 준비했다. 가지나물과 무나물을 만들 때도 있었고, 채 장아찌와 호박나물 당근을 볶아 준비할 때도 있었다. 시장에서 제일 좋은 소고기를 사다가 미역국도 끓여냈다. 미역국을 끓이지 못할 때엔 카레나 토마토 스튜를 준비했다. 그 외에 두세 가지 퓨전 반찬들을 만들고 계란 프라이를 넉넉하게 부쳤다. 입맛대로 비벼먹을 수 있도록 고추장 소스와 간장소스 및 여러 가지 소스를 준비했다.
그리하여 매주 금요일마다 주희네 집에서는 만찬이 열렸다. 한 주 일과를 끝내고 스트레스와 과중한 업무량에 시달려온 박사님들은 피곤함에, 연신 얼굴을 찡그리며, 주희네 집 벨을 눌렀다. 한 상 잘 차려진 음식을 먹고 마시며 그들은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들조차 밥그릇을 싹 비우고 까르르 웃었다.
주희는 그동안 해 왔던 것처럼 성경공부 후에 식사를 하는 방식을 하지 않았다. 모두가 배고팠기에 일단 밥부터 먹였다. 한 시간가량의 식사 후 후식으로 품질 좋은 차까지 마시고 나면, 찬양을 드릴 때도 모두 기운 차고 어려운 주제를 토론할 때도 기분이 좋았다. 여섯 시에 시작한 모임을 열한 시가 될 때까지도 파하지 않았다. 세 살이던 아가 은찬이는 너무나 졸려서 아직도 모임을 하고 있는 무리들에게 일방적으로 "굿 나잇"을 외쳤다. 이제 제발 집에 가란 소리였다.
주희는 한 번도 나서서 성경을 강론한다거나 어떤 주제에 대한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지 않았다. 다만 매주 금요일마다 오후 한 시부터 정성스레 식사를 준비했다. 그리고 식사하는 사람들 곁에서 서성이며 부족함 없이 음식을 더 내왔을 뿐이다.
모임에 나온 이들은 모두가, 영국에서 온 무신론자도, 미국에서 온 남 침례교인도, 우크라이나에서 온 러시아 정교회 인도, 그를 따라 막 신앙생활을 시작한 대만인도, 카메룬의 장로교 인도, 필리핀 선교사의 딸과 사위도, 큰아들과 남편을 6개월 사이에 잃은 캐나다 선교사도 밥 한 끼에 배를 두드리며 위로를 얻었다.
그리고 해가 지나기 전에 그들은 이 모임의 리더가 주희라고 인정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