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우리가 그것을 하고 있는가.
소통이라는 환상 속에 살고 있다. 두 가지 언어를 쓰는 사람으로서, 언제나 내 앞의 화자와 통하고 있다는 오해를 하고 있다. 그것이 환상일 뿐이라는 것은 오래도록 모르고 있던 중이었다.
“Do you understand me?”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된 후, 입버릇처럼 물어온 질문이다. 남편은 어찌나 나를 놀리는지. 그것은 이해받고자 하는 나의 깊은 욕구에서 비롯된 표현인데도, 정확하게 말하고자 하면, “Did you get it?”을 써야 한다며 엄청 웃고는 했다.
그러나 지금껏 평생을 살며, 나는 그 누구와도 제대로 된 소통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해하겠다며 끄덕이는, 사뭇 진지한 표정에 속아, 소통하고 있다는 환상에 젖은 적은 많지만. 결국에는 나도 그가 하는 말을 모르고, 그도 내가 하는 말이 뭔지를 모른다는 것을 확인한다. 배우자를 넘어 부모 형제 절친 베프와도 우리는 서로 하는 이야기를 모르고 있다.
글을 쓰고 싶은 이유는, 그 불가능한 소통을 이루어내고 싶은 가슴 깊은 욕망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경험에 의한 체념이 늘어, 결국엔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더더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그래도 모른 척 글을 써내고 싶다. 깊은 이해가 불가능하다면, 나를 작은 파편으로 만들어 천만명에게 보내어, 천만 조각의 작은 이해를 구하고 싶다.
모국어를 쓰는 친구들과도 그러한데, 외국어를 쓰며 소통하는 친구들과는 얼마나 그러한가. 그러나 우리는 외국어를 쓰고 있기에, 우리는 서로 완벽하게 잘 모르기에, 종종 더 솔직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한국인 친구였다면 털어놓지 못했을 이야기를, 이방인이라는 신분을 힘입어 알지 못하는 필리핀 친구에게 쉽게 쏟아내곤 한다.
삶을 살아갈수록 인간이란 불가능에 도전하도록 설계된 존재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나 보다.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할 독자들을 짐짓, 그러나 가뿐히 제치고 나를 위해서, 소통하지 못해도 표현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 똥글이라도 오늘처럼 써내리고 나면, 환상에 젖어 만족함으로 잠들 수 있기에 말이다. 쳇바퀴처럼 내일 다시 굴려 올라갈 과정이라도 나는 계속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