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걸어가던 여자가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이내 주변에 떨어져 있던 종이 쓰레기를 줍더니 땅바닥 위 검은 물체를 들었다. 그리곤 화단으로 가 그것을 버렸다. 아마 어느 몰지각한 견주가 강아지 똥을 그냥 두고 간 모양이다. 그렇다고 그 똥을 화단에 버리는 게 맞는 행동인가 생각하며 그녀가 버리고 간 강아지 똥을 가까이에서 살펴보았다.
그런데 똥이 아닌 지렁이다!
땅 밖으로 나온 지렁이가 미처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길바닥에서 꿈틀대고 있었나 보다. 작은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그녀가 궁금했다. 같은 방향이라 그녀를 계속 따라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녀의 행보가 범상치 않다. 주변 종이쓰레기를 또 줍는다. 길가에 버려진 박카스 병도 집어 들었다. 일종의 플로깅인가.(조깅하며 주변 쓰레기를 줍는 환경운동) 그런데 쓰레기를 담을 봉투도 없이 양손에 들고 걸어간다. 이 근처엔 쓰레기통이 없는데 전철역에 가서 버릴 생각인지 궁금했다. 그녀 덕분에 내 시야에도 쓰레기가 들어온다. 매일 걷는 길이다. 이렇게 많은 쓰레기를 평소엔 인식하지 못했다.
앞서 가던 그녀가 멈췄다. 그곳은 우리 동네 폐지 줍는 할머니의 아지트다. 할머니는 안 계셨다. 그녀는 폐지 위에 주워 온 종이와 유리병을 올려놓는다. 나는 그녀를 지나쳐 계속 걸었고 호기심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할머니가 미처 정리하지 못한 박스의 테이프를 뜯으며 정리하고 있었다.
주운 종이의 목적지가 쓰레기통이 아닌 이곳이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며 든 내 생각은 더욱 당황스럽다. 그녀를 정치인이거나 공무원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보기 드문 선행이라, 이기심이 가득한 나는 단번에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이런 사람이 아직 존재한다고? 뉴스에서만 보던 장면인데, 말도 안 돼. 설마 이런 행동을 매일 하진 않겠지. 땅 위에서 버둥거리는 지렁이 한 마리가 그녀의 마음을 동하게 하였고, 지렁이를 살린 후 손에 든 종이를 바라보면서 할머니를 떠올리게 되었을 것이다. 마침 나뒹구는 병도 보여서 주어 들었을 것이고, 종이와 병을 할머니 아지트에 올려놓으니 테이프가 제거되지 않은 박스 무덤이 눈에 들어왔겠지. 그렇게 나비효과처럼 선행의 크기가 점점 커졌고 마침내 지나가는 행인인 나를 감동시켰다.
이렇게 나는 그녀의 착한 동선을 보고 감동했다. 그렇지만 내일 이 길을 걸으며 그녀를 따라 하진 못할 것이다. 세상이 아직 훈훈하다는 결말로 끝을 내겠다. 착한 마음을 행동으로 옮겨 실천하는 그녀 같은 사람은 정치인이 되어야 마땅하다. 감동만 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나를 방어하기 위해, 그녀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 게 너무 미안해서
이렇게라도 글로 남겨 추켜세워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