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야! 이 세상에 태어난 걸 정말 축하해!
어른이 된 내가 어린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한번 들어볼래?
너는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게 될 거야. 그 사랑이 너무 깊어서 엄마 없이는 아무것도 하기 싫은 유년기를 보내게 된단다. 요새 태어났으면 ‘분리불안 장애’에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병명을 얻었을지도 모를 텐데 그 시대에 태어났으니 얼마나 다행이니. 친구와 노는 것보다 엄마와 있는 게 좋아서, 너는 엄마가 아줌마들과 대화하는 테이블 구석에 존재감 없이 조용히 앉아 있을 거란다. 그래서인지 철이 빨리 들어.
어른이 되고 보니 어린이는 어린이다운 게 가장 행복한 것 같아. 너는 속이 너무 빨리 여물었는데, 동심을 끝까지 붙잡고 지냈으면 좋겠어.
초등학생이 되기도 전에 너는 산타 할아버지가 엄마인걸 눈치채지. 산타 할아버지가 준 선물의 포장지를 엄마 장롱 속에서 발견했거든. 그래도 모른 척 산타 할아버지를 끝까지 믿어줬으면 매년 크리스마스가 얼마나 기대되었을까.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너무 일찍 잃어버려서 아쉬워. 그래서 넌 아이들을 낳고 나서 온갖 거짓말을 해 가며 동심의 세계에 가둬두려고 부단히 노력을 해. 정보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는 아이들인데 말이야. 모든 증거가 엄마를 향하고 있는데도 엄마가 주는 뻔한 선물을 받기 싫어서 알아도 모른 척,봐도 못 본 척하는 딸아이가 있어. 산타할아버지가 어떤 선물을 준비할지 궁금하고 기대되는 밤을 보내고 싶어서 산타를 믿기로 마음먹으니 정말 믿는 아이가 되더라고. 너도 딸아이처럼 오랫동안 산타를 기다리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그런데 이론!
이제 막 태어난 너에게 산타가 없다는 걸 말해 버린 눈치 없는 미래의 나잖아!
미안하다.
그럼 이건 어떨까? 어린 시절 너는 엄마와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하게 돼. 엄마가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고 하더라. 네가 좋아하는 케이크를 먹고 싶다는 소원을 빌어보라며 소원까지 정해주지. 눈치 빠른 너는 이 소원이 아빠에게 닿을 걸 알게 된단다. 생일도 아닌데 어떻게 케이크를 먹을 수 있겠어. 아빠가 돈을 쓸 텐데. 그래서 소원을 빌지 않았더니 케이크도 먹지 못하게 되었지. 엄마가 허락한 한도 내에서 이런 서프라이즈 한 이벤트를 마음껏 즐기는 어린이가 되면 좋겠어. 술에 취한 아빠가 집에 오면 용돈도 얻어 쓰고 말이야. 네가 가계부 쓰는 것도 아니잖니.
그리고 마지막으로 알려줄 게 있어.
아까 말했듯이 엄마와 분리불안 장애가 있는 너는 너무 소심해서 유치원 가는게 너무 싫은 어린이가 된단다. 그런데 떼를 쓰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어서 유치원을 억지로 왔다 갔다 하게 되지. 네 유년기 인생에서 가장 최악의 시기가 유치원을 다녔던 1년이란다. 그런데 이 경험이 나중에 네가 낳은 아이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돼. 네 아이도 널 닮아서 7살이 될때까지 유치원 앞에서 엄마와 헤어지기 싫다고 우는 유별난 아이거든. 그래도 어른이 되어 사회성을 장착하면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는 걸 내가 증명하고 있잖아. 물론 소심하고 낯가리는 성격은 멀리 가지 못하고 네 주위를 서성거리지만, 연기력이 많이 늘어서 오래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면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 경지에 이르게 된단다. 이런 어린 시절이 너는 많이 괴로울 거야. 그래도 평범한 어른으로 잘 자라게 될 테니 조금만 견뎌보렴. 너를 응원한단다.
다음 편지는 노년이 된 내가 중년이 된 너에게 보내마.
그때까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