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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고 Jul 13. 2024

카누를 탔는데 속도가 모터보트

  춘천에 가는 길이다.

  SNS에서 본 짧은 영상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국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카누를 타는 평화로운 영상이었다. 그 장소가  바로 춘천이었다.

  강 위에서 배를 한 시간 정도 타는 코스였다. 여름엔 많이 더울 것 같아 가을쯤 가려고 찜해 놓았었다. 그런데 오늘은 어제 내린 비의 영향으로 날도 흐리고 바람도 선선했다. 카누 타기에 적당한 날씨 같았다. 바로 업체에 전화를 걸어 예약 한 후 춘천으로 향했다.


  춘천시에 진입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진다. 일기예보를 다시 확인해 보았다. 오후엔 날이 갤 모양이다.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가 타면 될 것 같았다.  ‘호반의 도시’ 춘천 답게  강변을 따라 도로가 이어졌다. 길 옆으로 보이는 강물은 전날 내린 비로 불어나 있었고 제법 거칠게 느껴졌다. 설마 이 강에서 카누를 타는 건가? 내가 가는 곳은 이 강이 아니겠지? 내비게이션을 보니 도착까지 겨우 5분 남아 있다. 도통 강물이 좁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니 비바람이 세차게 온몸을 때렸다. 분명 여름인데 너무 추워 닭살이 오소소 돋아났다. 카누 탑승 장소에 다가가니 차에서 봤던 넓은 강이 눈앞에 펼쳐졌다.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동일한 강폭이었다. 아니 더 광활해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추운데 강물을 보니 두려움에 마음에 더 오싹해졌다. 그런데 우리 말고도 카누를 타기 위해 온 다른 팀이 있었다. 이런 날씨에도 카누가 뜨는 거냐고 물어볼 새도 없이 바로 탑승을 위한 교육이 시작되었다.


  먼저 우비를 나눠 주셨다. 우비를 입고 나니 추위가 가셨다. 마음의 추위만 다스리면 될 터였다. 돌이켜 보니 내가 예약하기 위해 전화했을 때 이미 춘천엔 비가 내리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날씨에 당일 예약한 것은 카누를 타겠다는 나의 확고한 의지로 비쳤을 것이다. 나 역시 봉투 가득 담겨있는 우비를 보며 우천 시에도 카누 탑승이 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비와 카누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노 젓는 수업이 이어졌다. 대강 따라한 후 두 명씩 짝을 지어 카누에 타기 시작했다. 내가 뒷자리에 앉고 앞자리에 12살 딸이 올랐다. 카누는 균형을 잡지 못하고 사정없이 흔들렸다.


어! 이거 좀 무서운데.


배가 뒤집혀 물에 빠질 것 같았다. 물속에 빠지는 건 내 계획에 없던 일이다.  절대적인 균형감각이 필요했다.  

  옆에서 보트를 타고 우리를 따라오는 직원분이 앞의 목표물을 가리켰다. 그곳까지 노를 저어 가라고 했다. 강물이 흐르는 방향과 직각이다. 열심히 노를 저어 보지만 배는 자꾸 강 하류로 떠밀려 내려간다. 물살이 세다. 물이 흐르는 방향을 역행할 수 없었다. 고작 두 명의 인간이 대자연의 힘을 거스를 수 있겠는가? 앞에서 딸아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본다.


엄마!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다른 카누들도 우리처럼 강물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힘 쓸 줄 모르는 중년의 아줌마와 힘없는 초등학생으로 구성된 우리는, 그들보다 한참 낙오되었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다. 보트가 다가왔다. 고속도로에서 고장 난 자동차를 견인하듯 카누 앞에 늘어져 있던 밧줄을 보트에 연결해 끌고 가줬다. 카누를 타고 있는데 속도가 모터보트다. 의외의 스피드에 너무 신나 환호성을 질렀다. 그 후로도 내 배는 여러 번 보트의 힘을 빌려 이동했다.


  넓은 강물을 가로지른 후 보트가 데려다준 곳은 V자 모양의 습지로 아까보다 안정감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비가 내려 수증기를 머금은 초록 습지는 마치 정글처럼 멋있었다. 이곳은 물살도 잔잔했다. 그래도 노 젓는 게 서툴러 자꾸 배가 뭍으로 향했다. 앞자리에 앉은 딸아이는 뱃머리가 뭍에 가서 충돌할 때마다 두려움이 일었나 보다. 이런 체험을 시켜준 엄마가 원망스러운데 엄마를 쳐다보면 균형을 잃고 물에 빠질까 무서워,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구시렁댄다.

 FM인 어린 딸아이는 직원이 짚어준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어 했다. 반면에 몇 미터 앞으로 전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는 엄마.  노 젓는 내 팔만 아프지. 배를 타고 이 멋진 경치를 가까이 감상하고 싶었을 뿐이다. 원하는 바를 이뤘다. 이렇게 앞과 뒤에 나란히 앉은 두 명은 서로 다른 마음가짐으로 한 배를 타고 있었다. 그래서 배가 제대로 나아가지 못했던 걸까?


  자연을 두 눈 가득 담은 후 배를 다시 보트에 맡겼다. 돌아가는 길도 속도감 있게 내달렸다. 바람이 내 마음처럼 상쾌했다. 그 사이 비는 잦아들었고 춥지도 덥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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