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깍! 잠금장치가 열렸다. 따릉이를 빌렸다. 자전거에 대한 내 마음속 빗장도 그제야 ‘딸깍’ 열린 느낌이다. 6개월 만에 타는 자전거다. 지난가을, 자전거를 타다 넘어진 후 다친 다리가 아직 다 낫지 않았다. 여전히 통증이 있어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있는 중이었다. 자전거에 대한 공포가 아직 남아 있었다. 브레이크를 잡다가 넘어졌기 때문에 자전거의 ’끼익‘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끼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릉이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내게는 ‘버스 대 자전거’라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이 선택은 자전거로 100m 도 가지 못하고 후회를 낳았다.
유난히 더운 날이었다. 허리가 아파서 주중엔 매일 한강을 따라 걷기 운동을 한다. 오늘은 오전에 밀린 일이 많아서 운동 나갈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마침 오후에 둘째가 수영장에 가는 날이었다. 수영장에 데려다준 후 남는 시간 동안 걷기로 했다. 수영이 끝날 때까지 50분의 여유가 있었다. 걷다가 혹시라도 늦으면 버스를 타고 돌아올 요령으로 목적지를 찻길이 가까운 한강길로 정했다. 빠른 걸음으로 중간 턴 지점으로 생각한 곳까지 여유있게 도착했다. 숨을 고를 겸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노을이 눈부시게 예뻤다. 눈으로만 담기가 아쉬워 핸드폰을 꺼냈다. 노을을 사각 프레임에 담다 보니 욕심이 커졌다. 한강 안쪽으로 조금만 더 걸어가면 그림 같은 장면이 펼쳐질 것이다. 걷다가 늦으면 버스를 타고 되돌아 가면 될 것이다.발걸음은 점점 안쪽으로 향했고 점점 버스 정류장과 멀어졌다. 시간 안에 갈 수 있을지 자꾸 시간을 확인하면서도 요리조리 자리를 옮겨가며 풍경을 즐겼다.
더 지체하다간 핸드폰도 없는 둘째를 영문도 모른채 기다리게 할 것 같았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정류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차도가 퇴근길 차량으로 꽉 막혀 있었다. 버스 도착 예정시간도 7분 뒤였다. 버스를 기다렸다 타더라도 찻길 위에 갇혀 동동 거릴 것 같았다. 차라리 뛰어가는 게 나을 수도.
그때 운명의 장난처럼 따릉이가 눈에 들어 온 것이다. 자전거를 탄다면 여유 있게 수영장에 도착할 수 있겠다. 핸드폰으로 앱을 켜고 방금 이곳에 급하게 주차한 것이 분명한! 길가에 가장 가까이 놓인 자전거의 QR코드를 찍었다.
딸깍!
자전거를 끌고 자전거 도로가 있는 길까지 걸어갔다. 오랜만에 타는 거라 조금 떨렸다. 자전거 도로에 도착했지만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조금 더 걸었다. 100M 이상 걸어간 후에야 자전거에 오를 수 있었다. 페달을 밟았다.
힘껏!
힘껏!
조금 더 힘을 줘서 힘———-껏!
이상하다. 페달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 속도도 느리다. 옆에 걷고 있는 사람과 속도가 비슷하다? 그제야 자전거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되돌아가기엔 꽤 와버렸고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자전거 체인이 빠진 건 아니었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잘 나가질 않는다. ’너무 오랜만이라 감을 잃은 건가? 조금만 더 타보면 속도가 붙겠지. ‘ 하지만 여전히 페달이 무거웠다. 근처 지하철역에 반납하고 걸어가야 하나 고민했지만 역으로 가면 동선이 더 꼬인다. 시간이 촉박한데 말이다. 그렇게 힘겹고도 느릿느릿하게 페달을 밟았다. 짧은 거리였지만 더운 날씨에 식은땀까지 더해 온몸이 땀으로 축축해졌다.
앞에 작은 화단이 있었다. 그곳에 누군가 놓고 간 따릉이 두대가 보였다. 따릉이 반납 장소가 아니었지만 덩달아 버리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모른 척 나란히 자전거를 세웠다.
그때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집에 혼자 남아 있는 큰애의 전화였다.
“엄마! 언제 와? 배고파.”
곧 저녁 7시였다. 집에 가서 밥도 해야 하는데. 무리해서 운동을 하는 게 아니었다고 후회했다.
”30분 내로 갈게. 조금만 기다려. “
그런데! 이 전화 한 통 때문에 따릉이 반납에 관한 도덕성의 문제를 고민조차 하지 못했다. 전화를 끊은 후 의식의 흐름대로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끌고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한강을 따라 이어진 자전거길로 접어들어서야 '또 자전거와 함께'라는 사실에 한탄했다. 어김없이 찾아온 저녁메뉴에 관한 고민이 나를 구렁텅이로 빠트린 것이다. 자전거를 지정장소에 반납하라는 계시인가?
어쩔 수 없이 다시 자전거에 올라탔다. 타다 보니 뒷바퀴에 바람이 빠졌다는 걸 알아챘다. 몸을 최대한 앞바퀴 쪽으로 숙이고 타니 속도가 조금 났다. 하지만 페달을 돌리는 허벅지에 힘이 너무 들어가 타이어가 아니라 내 허벅지가 먼저 터질 것 같았다. 헬스장에서 무게추를 잔뜩 달고 웨스트트레이닝을 하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반은 얕은 내리막길의 도움을 받아 자전거를 타고 반은 자전거를 끌었다. 반은 욕을 해가면서 또 반은 뽑기 운이 최악인 내 신세를 한탄하면서 걸어가는 것보단 조금 빠르게 돌아갔다.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할지 모른 상태로 따릉이를 지정 거치대에 반납했다. 딸깍 잠금장치가 잠겼다. 동시에 내 마음 속 자전거에 대한 빗장도 다시 걸어 잠갔다. 자전거의 끼익 소리의 공포에 바람 빠진 따릉이의 무거움까지 더해 당분간 자전거라면 치를 떨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