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선생님 믿겨지지가 않아요.

by 고고

선생님. 오늘 아이를 등교시킨 후 책상을 보니 일기장 챙기는 걸 깜박 잊고 집에 두고 갔더라고요. 일기장을 본 김에 펼쳐서 읽어보았어요. 일기를 다 읽고 나니 선생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선생님. ‘월래‘는 ‘원래’라고 수정해 주시면서 왜 ‘결찰관’은

‘경찰관’으로 고쳐주지 않으시나요? 아마 일기 내내 ‘경찰관과 결찰관’을 반복해 실수라고 생각하신 거죠? 넓은 아량으로 굳이 지적하지 않으신 거겠죠.


그런데 ‘새상’은 ’ 세상‘으로 고쳐주시면서 ’마냐게‘는 ’ 만약에‘가 맞다고 왜 알려주지 못하신 걸까요? ‘만약에’ 보다 ‘세상’을 잘 알아야 세상살이가 더 편하기 때문일까요? 만약에보다 ‘세상’이라는 단어의 쓰임이 더 잦기 때문이라는 것, ‘마냐게’ 수정한 단어가 너무 많으면 일기 쓰기에 흥미를 잃을 것 같은 배려. 그 역시 잘 알겠습니다.

선생님께서 그러셨죠. 저희 애가 또래에 비해 맞춤법을 많이 틀린다고요. 그래도 책도 많이 읽고 표현력이 풍부하니 금방 나아질 거라고 격려해 주셨죠. 그땐 저도 큰 애를 키운 경험이 있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학년이 올라가도 맞춤법이 나아지지 않아 적잖이 당황됩니다.


선생님.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저희 애는 책을 많이 읽은 게 아니었더라고요. 책을 많이 들은 거였어요. 읽는 책의 반 이상은 제가 읽어준 책이거든요. 그러니 표현력은 풍부했을 거예요. 눈으로 글자를 보지 못했으니 올바른 글자를 알지 못했고 글자는 그냥 들리는 대로 쓰는 거예요.


선생님. 배운 어른 중에 이토록 맞춤법을 틀리는 사람이 없을 테니 괜찮을 거라고 다독여 주세요. 저도 여태 맞춤법 검사기를 돌려 맞춤법을 확인하고 있는 현실을 곱씹으면서 나무라지 못하고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기다리면 될까요?


선생님…

저는 제 자식이 이렇게 늦도록 맞춤법이 엉망이라는 사실이 정말..:


‘미겨지지가 않아요.! ’



위트를 조금 더 느끼고 싶으시다면

다음 글도 추천합니다.

학생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스파이더맨은 이제 안녕

손해 본 것 같은 거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바닥생활 청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