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 오르막길을 차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현충원 꼭대기에 있는 연못 앞 매점에서 아이들과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계획이었다. 그때 인도에 서 계시던 할아버지 두 분이 우리 차를 향해 손짓을 하셨다. 길을 물어보려는 건가 싶어 남편이 차를 갓길에 세우고 창문을 내렸다. 일방통행이라 인도가 운전석 쪽에 있었다.
“충혼탑까지만 태워 주세요.”
현충원은 산을 깎아 만든 곳이라 오르막길이 상당하다. 걸어서 오르기 힘든 곳이라 우리도 차를 타고 가는 길이었다. 충혼탑이라면 여기서 차로 몇 분만 가면 되는 거리였다.
“아!”
남편은 옆자리에 앉아 있는 나를 잠시 쳐다보았지만, 내 동의까지 구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남편은 나와 눈을 한 번 마주친 것으로 뜻이 통했다고 생각했는지
“네. 타세요.”
하고 대답했다. 이 결정에 나는 당황하고 말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차 안엔 이미 네 식구가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짙은 선팅으로 차 안 상황을 알 리 없는 할아버지들은 남편의 대답을 듣자마자 차 양옆으로 다가왔다. 양쪽 뒷문이 동시에 열렸다.
“아이고 애들이 있네요. “
“네. 다 타기엔 너무 좁아요. 저희가 내려서 걸어 올라갈게요”
내가 다급하게 말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들은 손사래를 치며 금방 내릴 테니 잠시만 같이 타자고 엉덩이를 밀어 넣었다. 그 기세에 아이들은 가운데로 몰렸고 어깨를 한껏 움츠린 채 지그재그로 걸터앉았다. 모르는 할아버지와 밀착해 앉게 된 아이들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춘기인 딸의 얼굴은 더욱 굳어 갔다.
‘요즘에 누가 모르는 사람 차에 타지? 요즘에 누가? 모르는 사람을 차에 태우지?’
내 마음속은 요동쳤지만 이미 차문은 닫혔고 남편은 차를 출발시켰다. 이젠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는 딸 옆에 낯선 사람이 앉는 걸 꺼려하는데 그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여행지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산을 올라가고 있을 때였다. 내 맞은편에는 남편과 딸아이가 앉아 있었고 딸 옆에는 할아버지 한 명이 더 있었다. 그는 내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악의적인 손길로 반바지를 입은 초등학생 아이의 허벅지를 쓱 문질렀다. 그 노인을 절대 잊지 못한다. 늘 그렇듯 실수로 손이 스친 거라고 변명했지만 그런 실수는 실수조차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 경험 때문에 느닷없이 차 안으로 들이닥친 이방인 두 명이 선인지 악인지 빠르게 구별해야 했다. 나는 앞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앞을 볼 수 없었다. 마치 고장 난 인형의 머리처럼 고개를 한껏 뒤로 돌려 그들을 감시하기 위해 시선을 고정했다. 이 불편한 기운을 몰랐던 건 이들은 태운 남편과 이곳에 탄 할아버지 두 분뿐이었다. 그들은 마음을 놓지 못하고 쳐다보는 내 생각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고개까지 돌려가며 경청하는 사람이 오히려 친절하게 느껴졌는지 신나서 말을 이어갔다. 가끔 현충원에 전우를 보러 오는데 이제 다 돌아가시고 두 분만 남았다는 이야기, 오랜만에 오니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걸어 올라가기가 힘에 부쳤다는 이야기, 그리고 태워줘서 고맙다는 말을 번갈아 가며 하셨다.
그때 딸아이 옆에 앉은 할아버지 한 분이 갑자기 몸을 뒤척였다.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려고 애썼다. 좁은 공간에서 들썩이는 작은 움직임을 보자 나는 더욱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혹시 주머니를 만지는 척하면서 애한테 이상한 행동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비좁은 곳인데, 금방 내릴 분이 하필 뭔가를 꺼낼 건 뭐람. ’
수상했다. 아까 더욱 단호하게 내리겠다고 말하고 마음 편히 걸어서 올라갈 걸 그랬다는 후회가 몰려왔다. 그랬다면 착한 일을 했다는 기쁜 마음만 남았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주머니에서 간신히 꺼내 보인 것은 사탕 하나와 초콜릿 한 개였다. 짝도 맞지 않았다. 사탕 두 알도, 초콜릿 두 개도 아니었다. 식당에서 가져온 사탕일지, 집에서 아무렇게나 집어온 초콜릿일지 모를, 힘들 때 입안에 얼른 넣으면 기운 나게 해 줄 달콤한 당분. 할아버지들의 필수품이었다.
“줄 게 이것밖에 없어요. 예쁜 너희들 먹어라. “
호의였다. 손자뻘 되는 어린아이들에게 뭐라도 주고 싶은 할아버지의 마음. 당연한 결과였다. 호의에는 호의로 보답하는 것이 한국인 몸에 배어 있는 정인데… 요즘 세상이 워낙 험하다 보니 호의조차 악의인가 의심하며 바라보는 나 자신이 허탈하게 느껴졌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두 분은 연신 고맙다고 말하며 차에서 내렸다. 겨우 3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 내겐 3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씁쓸했다. 내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히치 하이킹은 흔한 일이었다. 여행 동아리 활동을 했던 나는 시골길을 걷다 힘들면 지나가는 차를 세워 자주 얻어 타고 다녔다. 자동차도 타고, 트럭도 타고, 트럭의 짐칸에도 타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랬던 나도 모르는 사람을 차에 태운다는 게 위험하다고만 생각했으니 완전히 변한 것이다.
세상은 급속도로 바뀌어 낯선 사람은 우선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는 공식이 생겼다. 최근 강남에서 성인 남성 두 명이 초등학생을 유인해 납치하려고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알고 보니 땀 흘리며 놀던 아이들에게 ‘음료수 사줄까?’라고 말한 게 와전된 것이다. 아이들은 모르는 사람이 건네는 호의를 거절했고 머쓱해진 남성들도 그대로 가던 길을 갔던 것으로 밝혀졌다. ‘대치동 마약음료‘ 사건 이후 아이들은 이제 모르는 사람이 주는 것을 받지도 않고 설령 받더라도 먹지 않는다. 그렇게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아이들과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눴다. 내 의견은 아이들 앞이라 도덕 교과서처럼 포장되어 거짓으로 전달했다.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 손은 내민 것은 잘한 일이니까. 타인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 엄마의 속마음은 아이들에게 고백하기 힘들었다. 아이들은 말했다.
“아빠가 우리의 의견을 묻지 않고 혼자 결정한 것은 잘못이야.”
“맞아. 누나랑 내가 얼마나 좁았다고!”
“그렇지만 착한 일을 한 건 잘한 것 같아.”
“하지만 난 할아버지가 준 사탕은 먹지 않을 거야. 누나는?”
“맞아. 모르는 사람이 준 거니까 버리자. “
그러나 나는 그 사탕과 초콜릿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차에 그냥 두었다. 일주일 뒤 운전하던 남편이 입이 심심하다고 먹을 게 없냐고 물었다. 남편에게 사탕을 까서 주고 남아 있는 초콜릿은 까서 내 입에 넣었다. 초콜릿의 달콤함이 입안 가득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