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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개구리 엄마의 마음

by 고고

평소에 말을 잘 듣지 않는 청개구리 같은 아이를 한 명 키우고 있다. 거실에서 내내 놀다가 공부할 시간이 되면 '나중에 할게'하고 자기 방으로 도망간다거나, 바닥에 널브러진 물건을 치우라고 하면 '이따 할게'를 입에 달고 산다. 저녁 준비가 다 되어 가는데 과자를 꺼내 먹더니 밥도 잘 먹을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친다. 방금 전 호언장담한 아이는 어디로 간 건지 밥을 입에 물고 삼키지 않는 게 일상이다. 숙제를 다했다고 거짓말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가장 지키기 힘든 일은 놀이터에서 놀다가 정해진 시간에 집에 오는 일이다. 늦도록 소식 없는 아이를 찾기 위해 나는 종종 놀이터로 출동한다.

그런데 얼마 전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날은 아침부터 하늘이 우중충했다. 하굣길에 친구 두 명과 어깨동무를 하고 나타난 아이를 학교 앞에서 만났다. 아이들은 어깨동무로 한 몸이 되어, 서로 떨어지기 싫다는 의지를 확고히 다지고 있었다. 비 예보가 있었지만 아이들은 어김없이 놀이터에서 놀고 싶어 했다. 허락을 구하는 내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친구들과 방방 뛰었다.

"흠 그럼 한 시간만 놀고 5시까지 집에 들어와야 해. 약속할 수 있지? "

"네!"

우렁찬 대답과 동시에 어깨동무를 풀고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순식간에 아이들은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아이 책가방만 덜렁덜렁 들고 집에 돌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조금 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비가 와서 놀이터 근처에 사는 친구 집으로 피신했다는 아이의 전화였다. 3학년이지만 같이 어울리는 친구 세명 모두 핸드폰이 없었고 엄마가 직장에 다니는 그 친구 집에는 집전화가 있었다. “ 엄마! 친구 집에서 5시까지 놀다 가도 돼?” 비가 오니 각자 집으로 가야 했지만 허락된 시간까지 친구와 함께 놀고 싶은 마음이 더 큰 모양이다. 어른 없는 빈집에 아이들만 있는 게 내키지 않았다. 카톡으로 다른 엄마들과 연락했다. 다들 바다와 같은 넓은 아량으로 5시까지 노는 것을 허락했다. 아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소중한 만큼 나 역시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몰랐는데 갑자기 창밖이 깜깜해졌다. 밖을 내다보니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급기야 천둥번개까지 치기 시작했다. 마치 한여름의 장마 같았다. 그제야 시간을 확인했다. 5시가 다 되었다. 비가 좀 그친 후에 집에 오는 게 나을 것 같아 아까 걸려온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ㅇㅇ 좀 바꿔줄래?"

" 방금 집에 갔는데요."

" 정말?"

끙... 평소 같으면 그만 놀고 집에 오라고 해도 오지 않는 아이인데, 오늘따라 제시간에 집에 오다니.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다. 친구네 집에서 우리 집까지 오려면 경사가 있는 6차선의 횡단보도를 건너야 한다.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그 도로는 마치 계곡처럼 물이 불어 흘러내린다. 게다가 앞도 잘 보이지 않는데 찻길을 잘 건널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마중을 나가 볼까 생각했지만 집에 오는 경로가 여러 가지라 아이와 길이 엇갈릴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집에서 기다렸다. 하늘은 속도 모르고 천둥과 번개를 계속 내리꽂는다. 초조하게 시계를 바라보았다. 빠르면 5분 안에 집에 도착할 수 있을 텐데 아직 현관문 앞이 조용하다. 전화를 한지 이미 5분이 지났다. 미끄러져 넘어진 건 아닌지. 길은 잘 건넜는지 걱정이 밀려왔다. 하필 이런 상황에 약속을 잘 지킬 건 모람. 저절로 청개구리 이야기가 떠올랐다. 청개구리 엄마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아니지. 오히려 청개구리의 마음이 이럴 테지. 엄마의 무덤이 물에 떠내려갈까 봐 비만 오면 운다는 청개구리처럼 나도 울고 싶었다. 이야기 속 청개구리는 교훈이라도 얻었지. 나는 우리 집 청개구리 때문에 발만 동동 구른다.

10분이 지나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나는 윗옷을 챙겨 입었다. 밖으로 나가려는 데 현관 앞에서 아이를 만났다. 비를 쫄딱 맞아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데도 엄마를 바라보며 함박웃음을 짓는 청개구리가 눈앞에 서 있었다.

"우산이 계속 뒤집어져서 쓸 수가 없었어. 게다가 바닥이 전부 물 웅덩이라서 신발도 다 젖었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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