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스타벅스가 알려 준 북한

by 고고


작년에 경기도 김포시의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스타벅스가 오픈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북한과 불과 1.4km 떨어진 곳이었다. 오션뷰, 리버뷰, 마운틴뷰를 넘어 북한뷰 스타벅스라니! 호기심에 한 번 클릭해서 정독했더니 알고리즘은 ‘너 이 기사 좋아하는구나!’하며 지속적으로 후속기사를 밀어줬다. 기사에서는 이 스타벅스의 의미와 찬반 논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알고리즘의 충실한 노예인 나는 빠짐없이 기사를 클릭해 보았고 급기야 ‘이곳에 한 번 가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오픈발의 인기 덕분에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사진을 보고 이내 마음을 접었다.

그렇게 6개월쯤 지난 어느 봄날이었다. 날씨가 좋은 주말 아침이었다. 나들이 갈 곳을 고민하다가 문득 잊고 있던 북한뷰 스벅이 떠올랐다. ‘이젠 인기가 좀 시들해졌겠지? 가보자고! ‘ 내비에 스타벅스를 찍고 출발했다. 민간인 통제구역이라 입장 규정이 복잡했다. 신분증 확인 후 입장권 구매, 셔틀버스를 탑승이라는 과정을 거쳐 전망대로 올라가야 했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스벅은 이겨냈구나! 셔틀버스를 탔더니 이내 군인이 따라 들어와 관람객의 입장권을 일일이 확인했다. 군인아저씨를 만나 잔뜩 긴장한 아들에게 남편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농을 걸었다. “너도 나중에 군대 가야 하잖아. 군대 가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엄청 힘들어.”라고 군대 썰을 풀기 시작했다. 1절만 하고 끝냈어야 했는데 눈치 없는 남편은 내릴 때까지 신이 나서 군대의 고된 생활을 구구절절 읊어댔다. “하지 말라고~!” 듣다 못한 아이는 끝내 골이 나고 말았다.

아이는 셔틀에서 내리자마자 아빠와 떨어져 멀찍이 걸어갔다. 그제야 상황파악을 한 남편이 뒤늦게 사과도 하고 달래 보았는데 한 번 상한 마음은 쉽사리 돌아오지 못했다. 본인이 우위에 섰다는 확신이 든 아이는 갑자기 아빠가 가던 방향과 정반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를 본 남편은 빠르게 백기를 들고 조용히 내게 문자를 보냈다. ”뒤를 잘 부탁해. “ 그리고 큰애를 데리고 전망대로 올라가 버렸다. 나에게 큰 짐을 건네고 저 멀리 사라지는 남편의 뒷모습에서 홀가분한 기운이 솟는 듯했다. 이제 뒷수습은 나의 몫. 목적지는 오르막길 위쪽이었지만 아이는 엄마가 따라오는걸 쓱 보더니 내리막길을 따라 하염없이 내려갔다. 날도 더운데 얼른 스벅에 가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싶었다. “그만 내려가고 얼른 올라가자. 군대라고 다 힘든 건 아니야. 군대도 종류가 얼마나 많다고.” 아이를 쫓아가며 뒤통수에 대고 아무리 소리쳐도 소용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내보이고 싶지 않았던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너 아까 군인 아저씨가 버스에서 표 검사하는 것 봤지? 아빠가 우리 표 갖고 있잖아. 아빠랑 떨어지면 우리 집에 못 간다”

군대에 겁난 아이에게 북한이 코앞인 ‘여기에 갇힌다’는 더 무서운 카드를 꺼내자,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급히 되돌아왔다. 애한테 거짓말한 게 미안했던 나는 군대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한 번 더 거짓말을 섞어 군대의 장점을 과장해 말했다. 겨우 마음이 풀린 아이를 데리고 앞서간 남편을 따라잡기 위해 부지런히 걸었다. 오르막길을 다 오르니 목이 탔다. 전망대는 나중에 보고 본래 목적지였던 신상 스벅을 먼저 가기로 했다. 문을 열자마자 사람들로 바글바글하고 시끄러운 좁은 실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주문하는 줄도 길었다. 안으로 들어가는 걸 포기하고 살며시 문을 닫았다. 한 번 본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문을 닫고 돌아서 망원경이 설치된 전망대로 가까이 다가갔다. 북한 전경이 쫙 펼쳐져 있었다. 전망대 앞에는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겨우 한강 정도의 폭이었다. 너무 가까워서 맨눈으로 봐도 북한이 보였다. 자세히 보기 위해 망원경으로 북한을 들여다보았다. 바로 눈앞에 있는 듯 생생했다. 망원경의 동그라미 속에는 북한 사람들도 있었다.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들, 또는 대열을 맞춰 걸어가는 사람들.

우리 가족은 북한 사람들이 보이는 게 신기해 서로 망원경을 독차지하기 위해 쟁탈전을 펼쳤다. 티브이 속에서 보던 북한과는 느낌이 달랐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실제상황이라는 것에 묘한 흥분이 일었다. 그러다 문득 서글퍼졌다. 19세기에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동물원에 가두고 구경하던 백인들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에서도 전망대와 스타벅스가 보일 텐데 북한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인산인해인 스타벅스에서 한 잔에 5천 원이 넘는 커피를 사서 마시는 남한 사람들, 외형만 멀쩡할 뿐 속이 빈 건물들이 세워진 북한땅, 그곳에서 맡은 바 일을 묵묵히 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 이 대비는 이 땅이 반으로 나눠진 것처럼 분명했다. 군대가 무섭다고 가기 싫어하는 초등학생과 티격태격했던 평범한 일상이 감사했다. 그리고 이 땅에 태어난 것에 안도했다. 그러나 이 감정을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스벅 때문에 느끼게 된 건 씁쓸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니가 왜 거기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