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교하던 6학년 딸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내가 문자로 보낸 사진 봐봐! 누가 거울을 버렸어.”
바로 문자를 확인했다. 분리수거장에 버려진 전신거울 사진이었다.
요즘 미용에 한창 관심이 많은 아이는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티셔츠를 바지 안에 넣었다 뺐다, 소매를 접었다 피기도 하며 옷매무새를 고치느라 분주하다. 화장대 거울, 화장실 거울, 밤이 되면 베란다 창문까지 동원해 요리조리 자기 모습을 비춰본다. 나는 양치하다가 거울에 비친 내 모습만 봐도 도망치고 싶은데, 역시 피어나는 새싹은 나르시시즘이 폭발 중이다. 작은 거울에 비춰보는 게 답답했던 아이는 결국 자기 방에 놓을 전신거울을 사 달라고 졸랐다. 내키진 않았지만 필요하긴 할 것 같아 “어어, 알겠어.”라고 대강 넘겼다. 그런데 누가 전신거울을 버렸다니! 딸아이는 횡재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저녁 먹고 엄마랑 같이 가보자.”
집에 돌아온 아이는 그 사이에 누가 가져가면 어떡하냐며 초조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밥을 평소보다 빨리 입에 욱여넣더니 순식간에 식사를 끝냈다. 나도 돈이 굳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 기대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금이 가거나 하자가 있어서 버린 게 아닐까 싶은 의심이 들었다. 게다가 꼰대 기질이 있어 요즘 아이들이 원하는 걸 바로바로 갖는 풍족함에 대한 반감도 있었다.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시대이다 보니 바라던 물건도 주워 쓸 수 있게 되었다. 한 사람의 버림이 다른 사람에게 소중한 선물이 되는 걸 보면, 이 버림은 의미 있는가?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딸이 “엄마, 밥 빨리 먹어.”라고 자꾸 재촉했다. 시간을 최대한 끌고 싶은 심보에 딸의 재촉을 모른 척하며 천천히 꼭꼭 씹어 먹었다.그래봐야 고작 십 분 차이였지만 물건에 대한 간절함이 조금이라도 커져서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다. 소심한 저항이었다.
거울은 의외로 멀쩡했다. 밝은 빛 아래에 비춰보니, 오래 방치된 탓에 뿌연 얼룩이 여기저기 보였다. 닦으면 금세 반짝일 것 같았다.
“네 것이니까 네가 닦아.”
집에 돌아와 딸에게 유리 닦는 법을 알려줬다. 마지못해 거울 앞에 선 큰애는 옆에서 호기심 있게 쳐다보는 동생을 보더니 말을 붙였다.
“너도 닦자.” (이것도 내리사랑인가?)
“싫은데!”
“그럼 내 방에 못 들어오게 할 거야.”
“누나야, 그건 너무 치사한 거 아냐?” 설거지를 하던 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그럼 내 방에 들어와도 거울은 절대 쳐다보면 안 돼.”
(자기 물건을 청소해 달라고 부탁하는 주제에 협박이라니. 쯧쯧, 시선처리도 하지 말라고? 불가능한 일이다. )
“할게!”
그러나 놀랍게도 이런 협박이 둘째에게 통했다.
둘은 나란히 앉아 열심히 거울을 닦았다. 거울은 새것처럼 깨끗해졌고, 이로써 모두에게 해피엔딩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