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주먹만 한 크기의 하늘색 앵무새가 잠시 우리 집에 살러 왔다. 학창 시절 집에서 강아지를 키운 이후, 다시는 살아 있는 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생명을 키우는 일엔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고, 가족이나 다름없었던 반려견의 죽음이 내게 감당하기 힘든 큰 상실감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동안 아이들이 무언가를 키우고 싶다고 할 때마다 반대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엄마! 소윤이가 여행 간다는데, 일주일 동안 우리가 소윤이네 앵무새를 봐줘도 돼?”
“우리가 누구야? 엄만 안 할 건데, 너 혼자 키울 수 있는 거야? “
“어! 혼자 할 수 있어.”
학교 방과 후 수업이 있는 날이면, 친구네 가서 앵무새와 놀았기 때문에 아이가 애정을 갖고 있는 새였다. 내키진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 집에 앵무새가 왔다.
새는 작은 새장 안에 살고 있었는데 그곳에 ‘집’이 있었다. 주방과 침실, 놀이방, 화장실이 다 있었다. 물통과 밥통, 횃대와 그네가 있었고, 화장실이라고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바닥의 트레이에는 중력에 이끌리는 대로 싼 똥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운이 나쁘면 밥통이나 물통 위로도 떨어졌다.) 앵무새는 장난감도 갖고 있었다. 손톱만 한 크기의 컵에 금속 물체가 달려 있어, 앵무새가 부리로 잡고 흔들 때마다 소리가 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새는 여러 종류의 소리를 낼 수 있었다. 새장의 철조망을 부리와 발톱으로 잡고 위아래로 이동할 때마다 철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고, 가끔 날개를 푸드덕거렸다. 또 자주 노래를 불렀다. 마치 예쁜 인형을 보듯 새장 안의 새를 바라만 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새는 ’나 살아 있어요.’라고 분명히 알렸다.
새가 우리 집에 방문한 덕분에 아이들은 서로 투닥거릴 시간이 줄어들었다. 힘을 합쳐야 했기 때문이다. 절대 앵무새를 돌보지 않겠다고 한 엄마 때문에, 둘은 서로를 의지했다. 함께 물도 갈아주고 똥도 치워주었다. 새장에서 꺼내 노는 것도 혼자 하기 무서워 꼭 둘이 함께 했다.
그러나 ‘사이좋음’은 삼일천하로 막을 내렸다.
“내가 저번에 똥 치웠는데, 왜 너는 안 해?”
“누나가 내 방에 새장 놓아서 내 방이 더러워졌잖아. 그러니까 그건 누나가 해야지.”
호기심은 잠깐 머물다 떠나버렸고, 게으름이라는 복병이 등장한 것이다. 나는 일주일이나 여행을 간 소윤이에게 고마워했다. 3일 만에 돌아왔다면, 난 아이들이 계속 새 덕분에 사이가 좋을 거라고 착각하고 생명을 키우는 것에 대한 마음을 활짝 열었을 것이다. ‘가장 키우기 쉽다’는 도마뱀을 검색하다가 마음이 혹해 분양받는 법까지 알아봤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앵무새가 집에 온 지 3일쯤 지나자 새 털은 새장이 있는 작은 방에서 바람을 타고 거실까지 날아왔다. . 아이 방의 새장 주변에는 새털과 모이가 둥글게 흩어져 있었다. 자주 쓸고 닦아야 했다.
’ 새 키우는 일도 만만치 않구나.‘
새가 강아지보다 키우기 쉬울 거라고 오해했었다. 그런데 경험하고 나니 강아지 키우기와 다름없었다. 밥 주고 똥 치우고, 몸에 묻은 똥을 닦아주고, 어김없이 털도 날렸다. 새장에서 꺼내 놀아주고, 여행 갈 때 맡아 줄 사람을 수소문해야 했다.
게다가 새가 강아지보다 키우기 힘든 심리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죄책감이다. 분명 날 수 있는 새인데, 하늘을 날지 못하게 가둔 것에 대한 죄책감. 인터넷을 찾아보니, 집안을 날아다니면 부상을 당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윙컷’이라는 방법을 통해 날개 깃털 일부를 잘라내기도 한다고 했다. 안타까웠다. 이 새도 이미 깃털이 잘린 건지 날지 못했다.
방바닥을 바삐 걸어 다니는 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 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새야.
아니, 넌 이름이 있지.
소라야.
… 너는 날고 싶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