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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핸드스피크 Mar 12. 2024

용의 비늘을 타고난 소녀

주영

내 피부는 반점이 두드러지게 많고 색소침착이 심하다. 심지어 한쪽 다리는 새카맣다. 그래서 이십대 중반까지 한여름에도 민소매와 반바지를 입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자타공인 땀쟁이로 정평난 나였는데도.


 조금만 더운 날씨에도 온 몸에서 워터파크가 개장하는 나를 잘 아는 이들은 내게 물었다.


 “덥지 않아?”


물론 미치게 덥지! 그럼에도 긴 바지를 고수하는 이유는 내 피부가 껄끄러워서가 아니다. 나는 나의 엄마, 순이씨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순이씨는 이 피부를 늘 안타까워하며 남의 시선에 내가 주눅들까봐 차라리 가리고 다니게 하는 방법을 택했다. 성인이 된 나는 무작정 가리고 다니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으나, 이 피부를 볼 때마다 눈가가 흐려지고 표정이 침잠하는 순이씨의 마음을 존중하여 그의 말을 따랐다. 실제로 순이씨는 여름마다 시원한 재질의 면바지를 사줬으므로 무더위를 꽤 참을 만 했다.


 이렇듯 나의 지난 생에서 ‘얼룩덜룩한 피부’는 뗄려야 뗄 수 없는 그 무언가였다. 그만큼 다양하고 유구한 역사를 지녔는데, 그 중 몇 가지를 풀어보겠다.


 나의 엄마, 순이씨는 반점으로 얼룩덜룩한 내 피부에 죄책감을 안고 있었다. 너무 유약해서 병원 입원까지 밥먹듯이 했던 나의 유년기, 작은 손에 링거를 꽂은 나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여워 힘들까봐 잘 씻기지 못했노라고 말했다. 때 되면 옷만 갈아입히고 물수건으로 닦아주며 그저 쉬도록 옆에서 지켜봤다고 했다. 그 때의 독한 약이 문제였던 건지, 잘 씻기지 못해 이렇게 변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평생 꼬리표처럼 그녀의 삶에 붙어 따라다녔다, 정작 나는 피부만 좀 얼룩덜룩할 뿐, 아주 건강하고 유난하게 씩씩하게 자랐는데도 말이다.


대신 이 피부로 인해 어린 시절 우리 모녀의 추억과 사건이 아주 많았다. 일례로, 순이씨는 언젠가 이 문제의 원인을 ‘때’로 추정하고 원인 해결에 만전을 기한 적이 있는데, 가장 많이 시도한 방책은 ‘주말마다 목욕탕에 가기’였다. 순이씨의 미션 수행 과정을 아래에서 서술한다.


 1. 목욕바구니를 꾸려 이른 새벽에 주영을 깨운다.

* 왜 하필, 지금, 꼭, 일찍 가야하냐는 질문세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면 아침부터 가야 깨끗한 첫 물에 씻을 수 있다고 답변하자.

2. 졸린 눈으로 비척거리는 주영의 손을 잡고 추위를 뚫으며 목욕탕에 입성한다.

3. 옷을 훌렁훌렁 벗어던진다.

4. 온탕에 뛰어들어가 몸을 노곤하게 녹인다.

5. 30분 뒤 사우나로 돌격!

6. 사우나에서 누가 먼저 나가나 대결을 한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주영이 혼자서 버티다가 먼저  나가떨어질 것이다.

7. 사우나에서 나와 냉탕에서 놀고 있는 주영을 잡아 열탕에 잠깐 몸을 담근다.

8. 뜨겁다고 아우성치는 주영을 온탕으로 보낸다.

9. 때수건을 들고 비장함이 가득찬 손으로 주영의 몸을 박박 민다.

 

이 과정을 두 세번 반복한 후, 우리 모녀는 유통기한이 지난 요플레를 얼굴에 바르고 머리를 감고 샤워하고 나온다. 그리고 딸에게는 바나나우유를, 엄마에게는 사이다라는 포상을 내리고 집으로 간다. 십몇 년간 반복한 우리만의 주말 새벽 일과였다.


목욕탕에 갈 때면 안경을 벗어 자동으로 시각과 청각이 일시정지되는 나는 순이씨와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앞서 기록한 ‘목욕탕 활동 패턴’을 몸소 체득했기 때문에 서로를 귀신같이 잘 찾고 서로의 신호를 빠르게 캐치했다.


그녀는 목욕탕에 가득찬 열기 때문에 항상 코와 양쪽 뺨이 빨갰다. 꼭 호빵맨 같았다. 빨간 얼굴에 축축 젖은 단발머리를 깔끔하게 넘긴 채 작고 호리호리한 몸이 큰 보폭으로 걸어오면 나는 순이씨구나 하고 눈치챈다. 그럼 순이씨는 나를 이끌어 어딘가를 가리키면 온탕에 가자는 건지, 사우나에 가자는 건지 대번에 알아차리고 따라가곤 했다.


그런 순이씨가 초록색 때수건을 들고 오면 나는 목울대를 크게 삼킨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때밀이 시간이 왔다. 순이씨는 나를 꽉 잡고 박박 피부를 밀어낸다. 그럼 나는 이대로 살가죽이 찢겨나가는 거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마치 집사에게 잡혀 목욕을 당하며 먀옹 먉 비명을 지르는 고양이의 심정이 뭔지 알 것만 같다. 하지만 분하게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순이씨의 때밀이 기술은 어디 황궁의 세신사가 와도 한 수 접고 갈 정도로 훌륭하다는 사실이다. 온 힘을 실어 미는데도 피부가 벌겋게 자극되지 않고 때만 분리되어 후두둑 떨어진다. 조져야할 부위만 빠르게 치고 나간다. 아마 목욕탕 사업을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대기업이 있었다면 우리 순이씨는 분명 “때밀이과” 과장까지 승승장구 올라갔을 것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순이씨의 전매특허 때밀이 기술은 온전히 주영 덕분에 만들어진 것이다. 나는 종종 이 사실이 퍽 웃겼으나 나를 매우 슬프게 하기도 했다. 결국 내 피부는 완전히 돌아오진 않았고 눈에 띄게 완화되기만 했을 뿐이다. 그녀의 엄청난 고생과 노력에 비해 성과가 좋지 않다. 그러나 오늘도 조금 달라진 내 다리를 보고 그녀는 기뻐한다. 그래, 순이씨가 기쁘다면야!


나는 얼룩덜룩한 내 피부가 부끄러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최초로 ‘특이함’을 인지한 것은 초등학생 때, 현장학습으로 간 워터풀에서 같은 반 아이가 내 다리를 보고 못생겼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때 인생 처음으로 다른 이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알았다. 실로 번개를 맞은 듯한 충격이었으나,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못생긴 건 맞지! 얘, 근데 나는 용의 비늘을 갖고 태어난거야.

 

그 시절의 나는 여러 마법소녀물 만화의 영향으로 출생의 비밀을 안고 태어난, 능력이 비범한 아이 컨셉에 심취해 있었다. 매일 학교 다녀오면 나무젓가락에 리본 줄 끝을 붙여서 휘두르며 온 집안을 뛰어다녔다. 여기 저기 마법을 부리는 모션을 취했다. 그런 어린이 주영만이 할 수 있는 사고방식이었다.


 자라서 스무살 언저리에 한 영화를 보았다. 한 사람이 적진에 잠입하고자 어떤 사람과 똑같이 닮기 위해 그 사람의 체형, 문신, 심지어 점과 상처까지 따라서 흉내 내고 같은 위치에 만들었다. 그 과정을 보는 것은 꽤 잔인하여 진저리를 쳤다. 그러다 옆에서 함께 보던 그에게 말했다.


 “만약 나를 사칭하려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안심해. 내 다리를 덮은 이 피부와 팔에 있는 왕점까지 따라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거야. 이걸 타투로 만들거나 상처내서 만들려면 너무 아파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걸!”


 그러자 그는 하하하 함빡 웃음을 지으며 그렇겠다고, 이 피부와 왕점을 기억해서 가짜 주영을 잘 판별하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를 웃겼단 사실에 어깨를 들썩이며 하늘로 치솟을 듯 기분이 좋았다. 내 피부의 반점은 주영을 상징하는 시그니처야. 남들과 구분되는 나만의 독특한 상처. 아무도 모방할 수 없는 이 세상 유일무이한, 나라는 존재에 대한 방증. 이 모든 역사를 거치고 내가 이 땅에서 잘 살아 숨쉬고 있다는 증거.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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