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핸드스피크 Apr 12. 2024

삼대가 덕을 쌓으면

태용

삼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한 것은 대표적으로 두 가지가 있다. 마터호른 산봉우리를 보는 것, 주말 부부. 특정 배급사의 영화 오프닝에서는 웅장한 산을 배경으로 수많은 별이 날아오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바로 거기에 나오는 산이 스위스 체르마트에 있는 마터호른산이다. 쉽사리 그 자태를 보기 어렵다던 봉우리는 마치 구름이라는 은밀한 베일 속에 싸여있는 듯하다.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 올라가 보면 봉우리에 구름이 걷히길 간절하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드디어 구름이 사라진 것 같아 얼른 카메라를 들어보지만, 정상에는 구름을 빨아들이는 자석이 있는 것마냥 어느새 솜사탕 하나를 먹고 있는 모습밖에 보지 못한다. 어찌나 마주하기 어려웠으면 삼대가 덕을 쌓아야 마터호른 봉우리를 볼 수 있다는 말까지 생겨났을까. 태영과 민혁은 신혼여행으로 간 스위스에서 선명한 마터호른 봉우리를 보고 올 수 있었다. 태영은 조상님의 은덕에 감사하면서도 슬펐다. 마터호른에서 그쳤으면 좋았을 텐데, 주말 부부까지 하게 된 것이다.


태영이 주말 부부라고 말을 하면 연차가 오래된 결혼 선배들은 곧바로 부러운 표정을 짓는다. 주말 부부가 주는 이점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하며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기회이니 지금을 실컷 즐기라고 한다. 태영은 자신의 심정과 너무나도 대비되는 그들의 감정을 느끼며 한바탕 웃는다. 그러다 문득 태영의 입꼬리가 씁쓸해진다. 갑자기 민혁이 보고 싶어진 탓이다. 잠에 들기 전 알람을 맞출 때 지금 자면 몇 시간을 잘 수 있는지 계산하는 것과 몇 밤을 더 자야 민혁을 만날 수 있는지 세는 것이 어느새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과가 되었다. 오늘은 아직 슬픈 화요일이다. 민혁을 보려면 3일을 더 기다려야 한다.


서울과 대전을 오가며 세기의 연애를 해오던 태영과 민혁은 피어오르는 이 뜨거운 감정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같이 살고 싶어 주변 사람이 놀랄 만큼 매우 신속하고 빠르게 결혼에 골인했다. 삶의 이치가 그러하듯이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오는 법이다. 태영의 인사 교류가 실패하면서 주말 부부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결혼해서 행복함과 동시에 주말 부부 생활은 비통했다.


주말 부부의 비애는 생일 주간에 가장 크게 나타난다. 생일이 주말에 껴있지 않으면 동반자 없이 생일을 외롭게 보내야 하는 것이다. 생일 전날 자정까지 기다렸다가 짜잔- 하고 축하해주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생일 당일에도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은 부지기수다. 태영은 다소 이르지만 민혁을 위한 생일상을 직접 차려주고 싶어 일주일 전부터 메뉴 구상을 시작했다. 민혁은 아침잠이 많은 편이니 몰래 생일상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토요일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마트로 가서 장을 봤다. 민혁이가 좋아하는 것들로 생일상을 차릴 것이다. 그런데 비몽사몽 장을 보다 큰 실수를 저질렀다. 미역국 고기를 소고기가 아닌 돼지고기로 사 온 것이다.


부랴부랴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돼지고기로 미역국을 끓인 사례가 꽤 있었다. 그래. 한번 도전해 보자. 떨리는 마음으로 요리를 준비한다. 보글보글, 냄새는 괜찮네. 간을 보니 나쁘지 않다. 이만하면 됐다. 안심한 태영은 쇼파에 누워 휴대폰을 하다 어디선가 끈적한 시선을 느낀다. 조용히 고개를 들자 갓 캔 감자가 졸린 눈을 비비며 서있다. 갓 캔 감자는 갓감이라고 줄여 부르기도 한다. 갓감은 태영이 민혁에게 붙인 별명인데, 막 아침잠에서 깨어난 꼬질꼬질한 민혁을 너무나도 애정하여 지어준 별명이다. 민혁은 생일상과 태영을 번갈아보며 한참이나 행복의 궁뎅이 춤을 추고 식탁 앞에 앉았다. 제육볶음, 달걀말이 등을 먹으며 연신 맛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의 숟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그의 숟가락이 미역국으로 가자 태영은 더 늦기 전에 고백했다. 사실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 소고기가 아닌 돼지고기임을.


민혁은 적잖이 놀랐지만 요리 신동 태영이 한 음식은 뭐든 맛있을 거라 말하며 국물을 맛보고는 괜찮다고 말했다. 역시 그렇지? 안심한 태영은 함께 미역국을 먹기 시작했다. 아까 미처 먹어보지 못한 돼지고기도 먹어본다. 입안에서 불길한 느낌이 감돈다. 어라? 더 이상 씹지 못해 살짝 벌어진 입과 놀란 눈으로 황급히 민혁을 바라본다. 민혁은 맛있어하는 표정으로 먹지만 진실의 미간까지는 숨기지 못했다. 그 미간에서 온갖 아우성이 느껴졌다. 다정한 민혁은 태영이 말릴 새도 없이 입안에 가득 찬 비린내를 견디며 국그릇을 다 비웠다. 잊을 수 없는 그 비린내는 태영에게 사랑으로 기억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달콤한 인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