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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핸드스피크 Jun 12. 2024

늘 부족한 것

매력

연극의 공연을 앞두고, 엄마의 역할을 맡게 된 나는 아직 엄마라는 걸 되어본 적 없기에

딸에게 대하는 마음은 어떤걸까 머리는 알아도 마음까지는 아직 고민이 많던 참에 엄마께 여쭤봤다.

“엄마,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사랑의 기준이 다 다르잖아. 근데 내가 지금 궁금한게 엄마는 딸에게 사랑은 어떤거야?”

“그냥 다 퍼주고싶은 마음이야 뭐든지 다 해주고 싶고”

“그러면 엄마, 딸이 이제 성인인데, 애기처럼 대하는 이유가 뭐야?”

“너 옆집 강아지한테 볼 때마다 항상 오구오구 하면서 예뻐해주잖아 그 것과도 같아 너무 예뻐죽겠고 사랑스럽고 그냥 뭐든 다 퍼주고 싶은 마음.”

맞다. 그렇다.

이 대화 나눌 때 장어구이를 먹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다 구운 장어는 우리언니와 내가 있는 쪽에만 가뜩 올려져있었다.

그리고 외식을 한 이유도 언니가 자전거 대회가 곧 앞두고 있었고, 나도 매일 밤늦게까지 공연연습을 한다고,

딸들이 고생하니까 몸보신을 하자고 엄마가 장어를 사주신 날이었다.

괜히 마음이 뭉클해졌지만

“엄마도 좀 먹어!”

“먹고있어! 너 많이 먹어.”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아팠다. 그 여운이 오래 갔다.

왜냐하면,

어렸을 때 나는 정말 온 가족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근데 아빠와 할머니는 나보다 무뚝뚝했던 우리언니에게 더 다정하게 대해주셨다.

그래서 어렸던 나는 나도 모르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상처가 쌓여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우리엄마는 언제나 우리언니와 나에게 누구보다 랄 것도 없이 똑같이 대해주셨다.

그래서 언제부터였을까 성인이 되고나서,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온도차이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상처를 가지고 있는 나도 몰랐지만 그래서였을까 사람에게 온도차이를 다르게 대하지않으려고 노력했다.

매사에 진실되게 있는 그대로 표현을 하고 챙겨줄 수 있었던 것이 엄마의 사랑덕분이었다.

금방 데이고도 강아지처럼 언제그랬냐듯이 다시 퍼주고, 보여주고 반복을 했다.

미용 일을 하면서 수 많은 손님들을 만났는데, 많이 듣던 중 하나가

“어떻게 농인이 그렇게 예쁘고 말도 잘하고, 일도 잘해 ?

엄마가 잘 키우셨다. 힘드셨겠다. 고생하셨겠다..”

처음에는 아직까지 깊이 이해를 못하고 그냥 감사하다고만 인사했다.

그 후로도 몇 번 계속 듣다가 어느 날 어떤 아주머니의 표정이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 엄마가 너를 엄청 자랑스러워하시겠다. ”

진심으로 응원해주시는게 느껴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으로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나버렸다. 나도 너무 당황스러워, 머리해주다 말고 화장실에 달려가서 펑펑 울었다.

뭐지 이 감정은?

내가 왜 갑자기 울고있지?

그 이후, 나는 ‘엄마’ 라는 말만 들으면 눈물이 났었다.

사랑이었다. 엄마의 사랑을 알게되었다.

그래서 왜 ‘엄마’ 하면 눈물난다는 말이 이해가 되었고, 나도 그런 말을 할 수있게 되었다.

엄마의 사랑이 너무 크게 느껴져서, 엄마께 앞으로도 계속 자랑스러운 딸이 되도록

어디가서도 엄마의 칭찬을 받게 해드리겠다고 엄마의 웃음이 끊이지않게 표현을 곧잘 하고, 애교가 많은 딸이었다.

늘 그렇듯 엄마가 우리를 챙겨주시면 나는 엄마를 챙겨드렸다.

엄마의 사랑을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탓인지 너무 애틋하다 못해 오죽하면 엄마께서 한번은 그렇게 말씀하신 적 있었다.

“난 네가 너무 걱정돼 엄마가 되고 애 낳으면..”

“왜?”

“사랑이 많은 혜진이가 엄마가 되면, 엄마생각이 나서 많이 울 것 같아서”

그 말을 듣고 엄마와 나는 같이 울었다.

정말 그럴 것 같았다.

엄마 생신날 밤새 일하고 오실 엄마를 생각하며 이른새벽에 일찍 일어나 요리를 하고, 케이크도 직접 만들어서 밥상이 휘어지도록 잔뜩 음식을 올려놓고 서프라이즈를 해드린 것.

또 다른 생신날 때는 내가 일하는 날이었는데 어떻게든 사정을 구해 허락받고 일찍 퇴근해서 빨리 장보고 집에 가서 직접 요리하고 축하해드렸던 것.

또 다른 날은 내게 처음으로 생긴 여름휴가가 있었는데 내가 그동안 일만 하느라 놀지못한 한이 있었는지 친구들랑 정신없이 놀다보니까 눈 깜빡할사이정도로 1주일의 휴가가 벌써 끝나고만 것이다. 그 다음날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너 1주일동안 휴가였는데 어떻게 하루라도 엄마랑 같이 있을 생각을 안하니?”

라는 말에 아차! 내가 실수했구나. 싶은 생각에 찝찝한 마음으로 나왔는데 집이 멀어질수록 너무나도 죄송스러운 마음에 불편하고 아파서 결국 원장님께 전화를 걸어 엉엉 울면서 죄송하지만 하루만 더 휴가를 달라고 부탁한 기억도 있다...^^; 결국 허락을 받았고, 다행히 해피엔딩으로 마친 나의 잊지못할 첫 휴가썰이다.

그만큼 나는 정말 엄마생각을 많이 했다.

엄마가 싸와주신 음식, 특별한 날도 아닌데 갑자기 옷을 사왔다며 입어보라는 둥, 과일을 잘 안챙겨먹는 딸들을 위해 일부러 갈아주시거나 하면 나는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음식이 너무 맛있으면 저절로 엄마가 생각난다는 것이.

엄마도 그럴 것이기에 사랑이 무엇인지 저절로 배우게되고 나도 똑같이 행동을 하고있었던 것이다.

한번은 엄마한테 그냥 이유없이 용돈을 드린 적 있었다. 큰 돈은 아니였지만 그냥 감사해서, 죄송해서, 드리고 싶어서 드렸는데 그 다음날 엄마가 갑자기

“혜진이가 그냥 주고싶어서라고 용돈을 줬지만, 엄마 마음은 이상하게 뭉클하고 아팠어. 엄마 생각해주는 마음이 느껴져. 고마워.”

라고 표현을 해주셨다. ‘역시 엄마는 내 마음을 잘 알고계시는구나.. 또 엄마의 마음은 이럴 수도 있겠구나’ 싶어 사실 울 뻔했지만 괜히 아무렇지않은 척하며 굴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댄서와 배우로 전향을 하고나니 바빠져도 꼭 엄마 생각을 했었는데,

어느 날 사람 관계로 지칠대로 지치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져서 예민해지다보니 점점 엄마를 생각하는 날이 줄어졌고, 잘 챙겨드리지 못했다.

얼굴을 보지 못하는 날도 계속 늘어나고, 오히려 사춘기 때보다 더 서운하게 해드렸을 것이다.

그렇지만 엄마는 그럼에도 이 상황을 다 받아들이고 계시고, 이해하고 계시는 것도 그 것이 다 사랑임을 알기에 그래서 내가 지금 마음 한구석이 아픈 이유인 것 같다.

엄마 많이 미안해, 제가 너무 소홀했죠

늘 엄마바라기로만 자랄 것 같은 사랑스러운 딸의 손길과 애교가 많이 그리웠을텐데, 언제나 나무처럼 제 뒤에서 묵묵히 계셔주셔서 감사해요.

엄마의 사랑은 말로 어떻게 절대 형용할 수가 없지만, 수 백년의 땅속만큼 아주 단단하고 누구보다 안전하고 무조건적의 신뢰적이고, 정말 아름다운 것 같아요.

살면서, 절대 다 갚을 수 없을 만큼 늘 부족한 저의 사랑과 너무나 큰 엄마의 사랑덕분에 엄마랑 닮은 제가 있어요. 진심으로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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