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
집 밖으로 나가자마자 새파란 하늘을 볼 수 있고, 그 아래에는 에메랄드 빛 바다와 청록의 나무들이 있다. 10분거리에는 맑은 하늘아래 웅장한 풍력 발전기가 있다.
매일 걸어다니는 우리동네의 제주 돌로 쌓인 낮은 벽의 돌담집은 나에게 큰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매일 이런 하루를 보내는 자유로운 제주가 좋다.
'여름의 나라' '나의나라' '바다의 딸' 은 나를 따라다니는 수식어이다.
하루 중 유일하게 보청기를 뺄 수 있는 시간, 현대사회의 필수템 핸드폰을 두고, 나는 나의몸을 바닷물에 맡긴 채 시간도 가는줄 모른채 수영하고 햇볕아래 태닝을 한다. 이것이 내가 즐기는 방법이다.
어느 늦은 밤, 친구는 해수욕장이 아닌 다른곳으로 수영을 하자고 했다. 그곳은 바다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생소한 포구였다. 심지어 밤수영은 처음이었고, 포구라는 곳은 눈에 보이는 모래가 아래에 깔려져있는 해수욕장과는 달랐다. 사람들은 절벽아래서 바다쪽으로 하나 둘씩 뛰기 시작하였고, 이는 소위말하는 '포구 다이빙' 이라는 뜻을 가진 일종의 제주사람들의 수영 문화였다.
모래가 안보이는 곳을 뛴다는 것, 그리고 이것을 잘 보이지도 않는 밤에 뛴다는 것은 정말 미친짓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하나, 둘 뛰었던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나도 모르는 도파민이 분비되어 어느 순간 높은곳에서 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방수랜턴의 밝은 조명이 바다속을 비추고 있었고 이는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일반적으로 제주에서 느낄수 없는 경험과 즐거움 그리고 색다른 짜릿함을 느꼈다.
두팔을 힘껏 위로 올려 두손을 비틀어 맞잡고, 상체를 숙인 후 엉덩이부터 발끝까지 아랫배에 힘을 주면서 바다속으로 뛰는것, 나는 이제 수영보다 다이빙이 좋다.
바다로 뛰는것에 미친 사람들.
나는 입을 다물수 없었다. 절벽 위에서 약 2m높이에서 달려들어 점프 후 공중에서 새가 나는것처럼 자세를 잡고 갑자기 웅크려 다시 기본자세를 잡고 입수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뛰는것에 미친 사람들이다.
이걸 두눈으로 직접 보고나면 나의 입수는 초라해보이지 않을까 위축되었다. 하지만 나를 알려주시던 스승님은 머리와 손, 다리까지 어떤 각도로 어떻게 자세를 잡아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주었다.
스승님이 알려주신 자세로 몇번 뛰고 난 뒤, 나는 자세가 조금씩 고쳐지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망설이지 않고 바로 뛰어들어 입수할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1단계.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개구리점프라는 새로운 것이 있었다.
개구리 점프는 입수자세에서 높게 뛰면서 동시에 팔과 무릎을 접었다가 물에 들어가기 직전에 다시 기본자세를 잡는 꽤 어려운 자세였다.
의욕은 앞섰지만 몇번 뛰었을때 생각보다 어려운 자세여서 살짝 겁을 먹어버린 나는 자세가 잘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나는 수없이 배치기를 하고 물먹는 하마가 되어도 연습을 하였다. 한번, 두번, 그리고 하루 이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하였다. 완벽하게 뛸 때까지 스승님을 붙잡고 코치를 받고 연습에 연습을 하였다. 스승님 옆의 다른 스승님이 생기고, 또 다른 스승님이 생겼다. 나에게는 다이빙 여럿의 바다 스승님이 생겼다. 몇명의 스승님이 더 생겨야 내 개구리 점프가 완벽해질수 있을까? 나는 지금도 연습을 하러 바다에 나간다.
다이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한낱 한시에 모이게 될까?
바다를 좋아하고 다이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느순간 약속이라도 한것처럼 여름마다 카톡방이 불타올랐다. 간조와 만조, 점심과 저녁을 확인하면서 언제 어디서 모이자 라는 카톡을 누가 올리면 삼삼오오 그곳으로 모여든다. 대부분의 인원이 남자인 것에 비해서 여자는 나를 포함해 몇명뿐이다. 남자스승님들을 뛰어 넘을수는 없지만 적어도 여자들중에는 제일 잘뛰는 여성다이버가 되어야지 라는 목표를 잡았다. 다이빙을 몇번 뛴 후 조금이라도 쉬고있으면 우리 스승님은 "야 뭐해? 안뛰어? 5번은 뛰고 1번은 쉬어야지" "왜쉬고있어?" "빨리 뛰어! 왜 뛰기 전에 주춤거려?" 등의 나를위한 장난 아닌 장난을 치시고는 한다.
나를 강하게 키워주는 스승님 덕분일까, 깔끔하게 멋진 자세로 다이빙을 성공 시키고 수면위로 숨을 내뿜으러 나오는 순간, 우리 뛰는것에 미친 사람들은 저마다 박수와 환호로 나를 호응해주었다. 이런 짜릿한 쾌감은 나를 자신감에 차게 해주었고, 다시 다이빙대에 발을 올려놓을수 있게 해준다. 나는 키가 170cm이다. 여자치고 큰 이 좋은 신체조건은 다이빙을 뛸때에는 좋지 않은 신체조건이 되고만다. 스승님은 이런 불리한 신체조건에 비해 정말 잘 뛰는 편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나의 다이빙에 대한 의지는 많은 고수들에게는 노력하는 초보로 보이게 되어 더 많이 가르쳐주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였나 보다.
이런 스승님들의 배움으로 인해 나는 저 모임에서는 꽤 잘뛰는 여성 다이버이다.
여름제주의 햇볕은 강렬하다.
오전 알바를 다녀와 땀 샤워라는 핑계로 낮따 하러, 저녁 알바를 하고 퇴근하면 습하고 덥다는 핑계로 또 야따를, 다이빙은 나에게 도파민 중독 그 자체이다.
나의 목표는 두팔을 날개처럼 활짝 펴 점프하여 자세를 바로잡아 스승님과 같은 자세로 입수하는 것. 공중에서의 1~2초, 날개짓을 하고 바다로 뛰었을때 그 자유로움과 짜릿함은 내가 육지에서 한번도 느껴보지못한, 느껴볼수 없는 것이었다. 자유롭게 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순간만큼은 그렇게 행복해보일수가 없다. 내표정도 저렇게 행복해보일까? 몇초도 안되는 이 다이빙은 나를 하루,이틀, 한달이상의 여름제주를 견디게 하는 회복제이다.
‘뭐해? 글을 다 썼으면 연습하러 가야지.’ - (아차차) ‘네!’
(*낮따: 낮에 하는 다이빙, *야따: 야간 다이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