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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핸드스피크 Feb 27. 2024

어떻게 방귀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태용

태영은 실로 으뜸가는 방귀쟁이다. 그 계보에는 길용이 있다. 땅바닥이 울릴 정도로 온 힘을 다해 방귀를 뀌고는 아닌 척 시침을 떼는 것은 길용의 특기다. 길용은 방귀를 뀌고는 기대하는 눈빛으로 입꼬리를 씰룩거린다. 제일 먼저 반응하는 사람은 언제나 태영이다. 태영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코를 막으며 후각이 마비된 것 같다며 호들갑을 떤다. 방귀의 원천인 길용의 엉덩이를 응징하기도 한다. 채 흩어지지 않은 방귀를 손으로 잡아 길용이나 현미, 해성에게 다시 선물할 때도 있다. 단 한 번도 길용의 방귀를 그냥 넘기는 법이 없다. 길용은 그런 딸의 오버 액션을 은근히 즐기며 좋아했다. 거센 비난에 굴할 법도 한데 길용은 도리어 자신의 방귀가 건강을 나타내는 지표라 주장했다. 태영이 길용의 방귀에 관대해진 건 방귀를 참는 행위는 몸에 해로운 영향을 준다는 글을 읽은 후였을 것이다.


반면 태영은 방귀의 신호를 느끼면 우선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한다. 사람이 있으면 우선 강인한 괄약근으로 방귀를 젠틀하게 저지한다. 그리고 신중하게 방귀의 냄새 유무를 판별한다. 방귀의 냄새가 무향일 것으로 결론이 나면 그 방귀는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 길용과 달리 태영은 매너가 있다.


태영은 몰랐다. 자신이 방귀쟁이라는 것을. 그는 유독 방귀를 많이 뀌는 것을 자신의 비염 탓으로 돌렸다. 코로 숨을 쉬기가 어려우니 입으로 숨을 쉴 수밖에 없다. 그렇게 곁들여 먹은 수많은 공기는 식도를 타고 위장으로 들어간다. 끝까지 살아남은 공기는 강한 방귀로 다시 태어난다. 태영은 방귀를 거세게 뀌면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길용이 자신의 건재함으로 방귀를 이야기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친구들 사이에서 방귀 냄새만 나면 늘 의심을 받는 태영이다. 억울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맞다. 괄약근의 판별력이 떨어져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이때 태영은 길용처럼 뻔뻔한 태세를 취한다. 그러나 방귀쟁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싶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민혁이였다. 태영은 민혁과 결혼하며 한 가지 다짐을 하였다. 부부 사이에 어느 정도 긴장감이 필요하니 남편에게 절대로 생리 현상을 들키지 않겠다고. 생리 현상을 들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오늘도 방귀를 뿡뿡 뿜어대는 길용을 바라보며 태영은 현미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 또 방귀 뀐다. 저러다 소파에 빵꾸나면 어떡해?”

“아빠는 소파가 스위치야. 누가 옆에 앉으면 방귀 뀌니까 저기 앉지 마.”

 

방귀 기계로 전락한 길용을 바라보며 태영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가 우려했던 사달은 생각보다 빨리 일어나고야 말았다. 평소 먼저 잠들던 민혁은 그날따라 잠이 오지 않았다. 새근새근 잠에 빠진 태영의 숨소리를 들으며 민혁의 눈꺼풀도 점점 무거워졌다. 막 잠에 빠져들려던 찰나, 어디선가 큰 소리가 들렸다. 이상하다. 분명 비 예보가 없었던 것 같은데. 민혁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떴다. 그때였다. 태영이 움직이더니 빵- 하고 방귀를 뀌었다. 순간 그가 공중 부양을 한 것 같기도 했다. 민혁은 놀릴 건수를 잡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다음날 민혁은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애써 참고 운을 띄웠다.

 

“여부. 나 어젯밤에 천둥이 쳐서 잠 못 잤어.”

“헉. 갑자기? 웬 천둥이지?”

“그러니까. 밖은 화창하던데, 옆에서 천둥소리가 나더라고.”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태영의 세상은 그렇게 무너졌다. 그러나 무너진 세상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노랬던 태영의 얼굴이 이제 혈기가 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태영은 여전히 방귀 매너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어쩌다 괄약근의 판별력이 떨어졌을 때 민혁은 태영이 길용에게 그랬던 것처럼 어김없이 응징을 한다. 가령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다던지, 코를 막으면서 ‘냄새나’ 춤을 춘다던지... 태영은 자신을 놀리는 민혁을 보며 민망한 듯 웃고 만다. 부부 사이에 긴장감이 필요하다지만 방귀를 들킨 것이 오히려 그들의 사랑을 키워주고 있었다. 태영은 유독 방귀 냄새가 심한 날에 그래도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민혁에게 물었다. 민혁은 얕고 넓은 지식으로 태영을 안심시켰다. 사랑하는 사람의 방귀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이 됐다고. 그러니 앞으로도 마음껏 서로의 방귀를 맡으며 건강하자고. 그러면서 태영의 몸에서 나오는 방귀마저 귀엽다고 했다. 물론 이것은 민혁의 새빨간 거짓말이다. 방귀 냄새가 귀여울 수는 없다. 방귀를 들킬 때마다 크게 뜬 눈과 입, 상기된 볼, 헐레벌떡 도망가는 엉덩이, 부끄러워 내지르는 높은 주파수의 비명 소리가 귀여운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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