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환상통> 김혜순 시집
돈키호테처럼 무모한 일을 벌이면서 진력할 수 있을까?
현실에서 벗어난 환상에 빠져 인생을 허비하는 게 아니라고? 그렇다!
그가 용기 있게 모험을 떠나서 실패하고 어려움을 겪지만, 삶을 살아가는 자세로 보면
영웅적이다. 사실은 신을 두려워할 줄 알고 세상의 미덕과 지혜를 지닌 인물이다.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며,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
그는 우스꽝스럽게 보이지만 부조리한 현실에서 고뇌한 사람이다. 고귀한 이상을 위해
죽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잘못을 고칠 줄 알며, 순수함과 선의로 사랑하고 불가능한
꿈속에서 사랑에 빠질 수 있었다. 믿음을 갖고 살았기에
”미쳐 살다가 제정신으로 죽은, 죽음이 죽음으로도 그의 목숨을 끝내지 못한 “ 묘비명을 남겼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영혼이 잡아당겨지는 시인으로 살아가는 것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오랜만에 시집을 읽어 보니 새로운 이미지와 상징들이 머릿속에 부딪혀 환각작용을 일으킨다.
친애하는 수르꼬레아뽀에마오또르윤따 여러분
나는 계단을 기르는 사람입니다.
계단에 물을 줍니다.
선율처럼 자라나는 계단
침울한 5층
안타까운 6층
서러운 7층
나는 눈물이 몸을 거슬러 오르듯 계단을 오르고
슬픔을 땅속에 묻듯 계단을 내려갑니다.
('불쌍한 이상(李箱)에게 또 물어봐')
이 십 년 전쯤 오래된 아파트 7층에 살면서 계단을 수없이 오르내릴 때 몸 여기저기서 뼈소리가 났다.
지금도 계단이 많은 산동네에서 오르고 내려가는 수 없는 그런 경험이 이 시를 크게 공감하게 만들었다.
최근 전미 도서 비평가 협회 상 수상 소식이 반가워서 모처럼 시집을 샀다.
‘날개 환상통’이란 시에서 강렬한 느낌을 받았고 거침없는 표현에 끌렸다. 몇몇 시들은 회화적이다.
습한 여름에도 발아래 땅이 한없이 멀어지는 그런 가을이 온 것 같고
네 목구멍이 목마름으로 타들어가 듯
네 몸에 새가 타 올랐음, 해
…
가슴 위에 얹은 네 오른손이 마치 네 엄마처럼
새들로 꽉 찬 네 가슴을 지그시 누르고
매일 그런 자세로 나를
네 안의 새들이 찬란했음, 해
(‘찬란했으면 해’)
시인은 새가 날지 않으면 거울처럼 납작한 세상이 될 것을 우려한다.
어느새 새가 된 시인은 새로 나는 것, 먼 길 떠나는 것이 좋다.
'공중이 아니면 숨을 쉴 수 없다'라고 영혼의 숨결을 찾아, 죽음으로 닫힌 문도 없는 곳
자유가 있는 장소를 향해 불면증과 현기증 앓으며…!
사랑은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늘 생각하고 위하는 마음으로 뭔가를
해주고 싶어 한다. 시는 사랑하기, 꿈꾸기, 싸우기, 견디기…. 시는 누구라도. 쓸 수 있지만
시인으로 살기는 어렵다. 그래서 새-하려는 용기를 지닌 시인은 ‘being bird’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