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
세 번째 이십을 맞아 돌아보니 청춘은 나이가 어릴뿐더러 인생 경험이 매우 부족했다. 그런데
젊음이란 턱없는 자신감과 열망에 차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허영과 어리석음을 벗어나기 어렵다.
내가 나라와 민족에 대해 사명감을 느끼고 사회 변혁의 당위성을 받아들여 내면의 격동과 헌신부터
시작했던 것도…! 나아가 ‘인류’라는 말에 가슴이 뭉클하고 온갖 이상적인 개념들에 붙들렸을 때
많은 것을 단념해야 했다
자신에 대해서도 별로 알지 못하지만, 자신의 절대성에 대한 믿음을 지닌 미숙성의 시절이었다.
당연히 내가 예술과 인생에서 성취하고자 하는 '아름다움'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막연하기만 했다.
결혼 후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모든 다른 감수성을 무디게 온통 마음을 사로잡는 기쁨을
맛보았다. 자신을 억누르고 타인의 경험을 통해 살 줄 아는 힘을 가지게 되면서
아이들과 더불어 나도 성숙해졌다.
오십쯤 그림을 좋아하는 자신을 다시 찾게 되고 전시회를 열면서 제대로 그려야겠다는
책임감과 욕심까지 생기게 되었다. 그런데 삶은 늘 새로운 문제를 직면하게 하고 과제를
던져준다. 핑계일지 모르지만 그림에 몰두할 시간이 부족하다. 그러나 문제가 없고 결핍을
느끼지 못하는 안온한 삶이 좋은 것도 아니다.
권태의 경험은 '사물에 대한 건강한 관심'을 전부 마멸시켜 버리게 하는 것이 아닐까?
혼동이며 불안한 삶에서 내가 창조하는 예술은 질서 정연하다. 예술적 치열함이 부족하고
아직 갈 길이 멀다. 일정한 수준의 성취애 이르려면…!
과연 노력한다고 해서 될지 모르지만, 어떤 개념이나 주제를 붙들고 구체적 형태와 이야기를
배제한 추상적인 표현이 내게 잘 맞지 않는다. 사랑스럽고 풍요로운 모든 세상을 담기 어렵다.
나는 숲을 산책하고 자연을 만나면서 느끼는 아름다움과 사물의 양상을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기를 바란다. 내 그림이 자연처럼 순하고 연하게 만드는 충만한 풍요로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